광양인의 멋
광양인의 멋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09:12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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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택 광양고 교사
누구나 고향은 포근한 어머니의 품과 같을 것이다. 산과 들이 항상 옛 모습 그대로이고 오가는 사람들이 낯익어 마음에 부담이 없으며, 나누는 대화들이 소문에 들었던 이야기들이라 쉽게 동참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향에 대한 이러한 감정은 마찬가지다. 지금껏 광양에서 태어나 50년이 넘도록 살았으니 고향에 대한 정과 애착에 이제는 광양을 떠나 살 수 없을 만큼 그 정이 깊어졌다. 옛 성현들은 '자연을 몹시 사랑하는 것'을 '천석고황'이라고 한다는데, 나 또한 내 고향 광양의 산수와 모든 것을 사랑하니, '천석고황'에 빠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광양고등학교 현관을 들어설 때마다 난, 대형 사진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게 된다. 백운산 노래미봉에서 억불봉 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인데, 어느 누가 이 사진을 보면서 백운산의 장엄한 기상을 느끼지 않은 이가 있으리오? 이 사진을 보면 볼수록 우리 광양인의 기상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진이 학교 급식실에도 걸려 있는데, 우리 학생들도 나처럼 그 사진을 보며 백운산의 기상을 맘껏 느끼고 있으리라 여긴다.

그럼, 지면을 통해 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모처럼 주어진 기회이기에, 고향 자랑도 하고 광양인들에게 바라는 평소의 소견도 몇 가지 전해 보련다.

우리 광양은 면적이 그렇게 넓지 않지만 해발 1218미터의 장엄한 백운산의 기슭에 섬진강이 굽이 흘러 광양만에서 여정을 푸는 산과 들, 강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조화로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이 많아서 좋다. 봉강 계곡의 짙은 녹음, 옥룡계곡의 풍부한 수량, 그 중에서도 어치계곡의 구시골폭포는 광양인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할 만큼 시원한 곳이다. 8월의 무더위에도 폭포에 몸을 담그면 금시 간담이 서늘해져 이내 바위 위로 올라와 몸을 녹이게 되는데, 그 때 느끼는 기분은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있어 좋다.

또한 눈꽃 피는 겨울의 백운산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니던가? 앙상한 가지마다 서로 다른 모습의 자태는 태초의 진경산수 바로 그것이었다. 상쾌한 기분에 억불봉 정상에 오르면 남해안의 넓은 바다와 수많은 섬들이 발아래 펼쳐져 이내 백만 대군을 얻은 듯한 장수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라던 이백의 시구가 아니더라도 속세의 번뇌를 금방 씻어버린 듯한 탈속의 세계에 빠져들며, 그야말로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다.

이렇게 순수한 내 고향 광양의 산골과 어촌에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우리의 젖줄인 광양만에 광양제철소와 컨테이너항이 건설되었으며, 인구도 두 배로 늘어 행정구역도 시(市)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이제는 우리도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의식에서 벗어나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의 시민의식을 키워야할 시점이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다.

첫째, 지금은 우리 광양인에게 개방과 포용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요즘 시내 거리를 나가보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 분들은 모두가 광양에 직장과 일터가 있어 찾아온 새로운 광양인이다. 우리 광양인들은 이분들이 낯선 광양에서 정을 붙이고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따뜻하게 맞아 주어야야 할 것이다.

기득권과 텃세보다는 그 분들과 함께 어우르고 배려하는 미덕을 보이는 것이 사람 사는 곳의 보편적 인심인데 이것을 보이는 것이 바로 광양인의 멋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광양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접해있어서 언어에 약간의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 강한 엑센트의 경상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리지 않는다. 물론 상냥한 서울 말씨나 조금 늘어진 충청도 말씨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상대방과의 관계형성에 가장 첫 번째의 매개체인데 이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우리 광양인은 선천적으로 포용성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따라서 새롭게 광양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분들과 함께하는 시민의식을 발휘할 때 광양인은 멋있는 시민이 될 것이다.

둘째, 광양인의 기질과 저력을 한 층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광양인이 누구인가? 왕년에 고춧가루 서말(세말) 먹고 뻘 속 삼십리를 기었던 끈기와 근면성의 시민이 아닌가? 저 가파른 산등성이에 밤나무를 심어 소득을 일구었던 근면성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고장이 바로 우리 광양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질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서 부가가치를 찾아야하며 창의적이고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한때다. 그래서인지 요즘 신세대들은 '고춧가루 서말과 뻘 속 삼십리'가 아니라 벼룩 삼천 마리를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반상젱이(반숙젱이) 고개를 몰고 넘어가서 순천에 도착했을 때는 오천 마리로 늘려야 광양인이라고 자칭한다.

누가 지어낸 말인지 모르지만 기막히고 감탄할만한 시대적 발상이다. 이 말의 의미는 그 작은 벼룩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과 탁월한 통솔의 카리스마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삼천마리를 오천마리로 늘린다는 것은 현대식 재테크의 뛰어난 경영능력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창의적이고 치밀한 계획과 예리한 판단에 의해 행동할 때 광양인은 더욱 멋질 것이다.

셋째,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우리 가정에서도 가구나 용품들이 있어야 할 곳에 놓여있을 때 보기도 좋고 사용하기도 편리하다. 주방기구가 거실에 있다면 오가면서 요리를 하는 수고를 감당하여야 하며 시간적으로나 에너지 소비 면에서 무척 비효율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시의 개발과 건설에서도 이 논리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렇게 효율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형평성이 깨진다는 것이다. 원래 효율성과 형평성의 개념은 서로 상치하며 배타적이기 때문에 이들을 동시에 추구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 것이 지혜롭게 조화를 이루었을 때는 번영을 하였지만 끝내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 동시에 패망하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으며, 이미 역사에서 그 교훈을 얻고 있다. 따라서 지역적인 안배만을, 또는 효율성만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의 온갖 지혜와 슬기를 모아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조화를 이끌어 낼 때 경쟁력이 길러지며 그러한 때 광양인은 가장 멋진 사람들이 될 것이다.

넷째, 우리고장의 문화 유산과 관광자원을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우리 광양은 많은 문화 유적지와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매천 황현 선생의 생가와 사당, 도선국사 유적지인 옥룡사지, 중흥산성과 중흥사, 불암산성, 마로산성, 학사대, 김시식지, 유당공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화 유적지가 있다. 이러한 문화 유적지를 잘 가꾸고 보존하여 우리 후손에게 광양인의 얼을 제대로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광양장도와 광양궁시의 자부심도 높여야 하며, 고로쇠, 매실, 숯불구이, 전어, 밤, 재첩, 작설차, 등 우리 고장에서 나는 특산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질을 높여 세계적 상품으로 자리매김해야 되리라 여긴다.

그리하여 근대의 석학이시며,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신 매천 향현 선생님의 드높은 기개와 충절을 본받은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야 될 것이다.

백운산은 우리의 정기를 대변해 주며, 사계절 항상 변함없이 대해주던 잔잔한 광양만은 우리에게 풍성한 텃밭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다양한 어종과 조개, 겨울철의 김(해태)은 든든한 소득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광양만은 제철소의 뜨거운 용광로와 컨테이너 부두의 거대한 선박들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모아야 하며 앞에서 언급한 한 차원 격상된 시민의식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광양제철의 불빛이 한반도를 밝히며 광양항을 출발한 선박이 전세계를 누비는 밝은 미래가 도래하였음을 확신하며, 영광된 유산을 후세에 남겨주기를 기대해 본다.
 
2004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