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水)의 철학, 지도자의 철학
물(水)의 철학, 지도자의 철학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1:52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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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규 / 행정학박사
물은 신비적ㆍ철학적 사유 내지 신앙의 대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활철학 내지 윤리로서의 수행의 대상으로 자주 비유되기도 한다. 물의 종교적인 정화력은 기독교의 세례나 영세, 불교의 계욕, 관욕 등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물이 지닌 청정력과 생명력이 통합적으로 믿음의 대상이 되면서 각종 신흥종교들이 물에 대한 신앙을 수용하여 ‘물법신앙’ 또는 ‘찬물신앙’이 형성되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 사이에서는 갠지스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사후에 이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왕생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갠지스강 유역에는 연간 100만 이상의 순례자가 찾아드는 유명한 바라나시를 비롯하여 하르드와르ㆍ앨라하바드 등 수 많은 흰두교의 성지가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예부터 첫새벽에 길은 우물물을 정화수라고 하여 재앙을 쫓아내거나 복을 기원하는 신령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물은 사람들에게 말없는 교훈을 준다. 그래서 물에 대해 중국의 노자는 「도덕경」제8장 첫머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구절로 대표될 수 있다. “선(善) 가운데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자라게 하지만 그렇다고 깨끗한 곳에 있으려고 다른 물건들과 다투지를 않는다” 또한 “이 세상에 물보다 더 무르고 겸손한 것은 없다”고 했다. 

조선시대 초의선사는 스님으로서 대종사에까지 오르신 분으로 불교와 유학에 깊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서문과 서화에도 능했다. 스님의 <다신전(茶神傳)>에 물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차(茶)는 물의 신이요 물은 차의 모습이니 참 물이 아니면 그 신기가 나타나지 않고, 정다가 아니면 그 모습을 엿볼 수 없느니라” 그리고 또한 “흐르는 물은 괴여있는 물보다 좋고 그늘의 물은 햇빛 받은 물보다 좋다” 라고 했다.

물은 화학적으로는 수소2, 산소1로 결합되어 있는 물질이며, 화학식은 H2O이다. 천연으로는 도처에 바닷물ㆍ강물ㆍ지하수ㆍ우물물ㆍ빗물ㆍ온천수ㆍ수증기ㆍ눈ㆍ얼음 등으로 존재한다. 우리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중 물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다와 육지의 비율이 7:3 이듯이 매우 상식적인 사실이다.

그 물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물은 유연하다는 사실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아도 저항하지 않고 그 그릇 모양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보면 손무(孫武)가 물의 신비성을 느낀 내용이 나온다. “물이란 온도에 따라 안개로도 변하고, 이슬로도 변하고, 비로도 변하고, 작게는 이슬이 되고 많이 모이면 실개천이 되고, 그것이 더 많이 모이면 강과 바다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보이고, 모난 것에 담으면 모나게 보이는 것이 물이 아니던가...”  둘째, 물은 지금 흘러가야 될지 아니면 잠시 쉬었다 가야 할 시기인지를 잘 안다.  셋째, 물은 겸손할 줄 안다. 물을 삶의 철학에 연관시켜 “물은 아래로 흐른다” 즉, 겸손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상과 집착을 버리고 겸손해 할 줄 아는 하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넷째, 물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돌아갈 줄 안다. 물은 돌이 있으면 돌을 피하고,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피하고, 또 방해물이 있어도 저항하는 것을 모르고 자유ㆍ자재로 흐르는 것이 물이다. 
 
마음이 곧 우주라고도 하지만 원래 형체가 없는 공(空)이라고 할 수 있다. 구태여 형체로 표현한다면 물로 비유해 보겠다. 물은 선이란 그릇에 넣으면 선행자로 변하고, 악행이란 그릇에 넣으면 악행자로, 귀한 그릇에 넣으면 귀한사람으로, 천한 그릇에 넣으면 천한사람으로, 정치의 그릇에 넣으면 정치가로, 성직이란 그릇에 넣으면 성직자로 변하는 것이다.

물은 흘러가는 그 모습 자체가 법(法)의 만고의 진리이다. 법법자(法)는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뜻한다. 이처럼 물은 원칙과 정도로만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의 존재 방식은 무엇일까. 모두가 싫어하는 곳, 낮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자기를 낮추면서 흐르는 것이다. 모두가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안달하지만 물은 그런 일과 상관없이 우주적 원리에 자기를 턱 맡기고 유유자적 낮은 데로 임할 뿐이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꾸준하고 조용하게, 성실하고 정의롭게, 오직 섬기는 자세로 시의 적절하게 움직이는 물, 어느 누구와도 겨루는 일 없이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물, 과연 누가 이런 물을 나무랄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참 나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는 “물의 철학”을 끄집어 낼 때, 우리 모두 이 시대가 요청하는 참 지도자(指導者)가 될 수 있다.
입력 : 2006년 0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