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육성이라는 ‘늪’에 빠진 광양시
명문고 육성이라는 ‘늪’에 빠진 광양시
  • 최인철
  • 승인 2009.04.15 22:07
  • 호수 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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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의지의 승리’. 1934년 뉘른베르크의 쩨펠린펠트 스타디움에서 나찌당의 전당대회가 열린다. 수많은 서치라이트가 환상적인 스펙타클을 연출하는 가운데,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마치 신이 강림하는 듯한 이미지로 단상에 오른다. 그가 힘차게 연설을 할 때마다 청중은 일사불란한 반응을 보이며 광란에 빠진다. 광신적인 종교 집단처럼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던 군중이 보이는 가운데, 확신에 가득 찬 그들의 지도자가 포효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는 탈혼망아의 상태로 접어든다. 배경음악으로는 바그너의 역동적인 독일 음악이 흘러넘친다.

한 시의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게한다. “초중고교 일반 학생들에게 쓰여지는 비용을 축소해 우수학생들만을 위해 쓰는 것은 교육 형평성을 위축시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시 교육지원 관계자의 대답은 “한시적으로 5년만 쓸 수 있도록 양해해 달라. 5년 후면 광양시가 ‘명문교육도시’로 육성될 수 있다”였다. 묻자 시의 현 교육정책은 오년지대계인가.
14일 광양시가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맞춤형 우수학습반 운영계획’ 예산을 추경에 다시 상정했다. 지난 정기예산 때 승인을 요청했다가 8억600만원 전액이 삭감됐지만 뚝심 좋게 밀어붙이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각종 민원에 밀려 오락가락 하던 시 행정이 교육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만에 무서운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무서운 결집력의 배경에는 성과에 매달리는 시의 광기어린 교육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명문고 육성에 걸림돌이 되는 시각이나 반대의 울림에는 눈과 귀를 닫은 지 오래됐다. 이제 서울대 아니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라고 불리는 서울 유수의 대학에 지역고교생들을 좀 더 많이 보내면 자연히 명실상부한 교육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착시를 경험하고 있다.

공직사회 내부의 비판은 이미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명문고 육성의 걸림돌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왜 명문도시를 만들어 시민의 오랜 숙원인 ‘교육자치’를 이루겠다는데 ‘딴지’를 거느냐”는 시각이다. 어떤 비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다.
‘명문고 육성’이라는 집단최면 현상이 시민사회에 버젓이 횡횡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집단최면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집단최면에 빠져 있는 줄을 모른다는 점이다. 무감하게 집단최면이 반복되고 반복이 일상화되면 최면의 효과는 더 멀리 더 깊게 확대되고 재편된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보이고 착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다수의 학생들은 단지 이들 우수학생들을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에 우수학생이라는 공간으로의 진입여부는 결국 학부모와 학생도 성적 앞에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그물망이다. 더나가 탈락한 학생은 잉여인생의 쓴 잔을 마셔도 어쩔 수 없다는 엘리트 중심의 비이성적 교육이 악순환 된다.

이제 시의 교육정책은 점점더 수월성과 성과 달성을 향해 구체화되고 있다. 순천지역 고교평준화에 힘입어 지역 고교 가운데 서울대 진학 학생수가 점점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히 고무된 모습이다. 그렇다. 지금 시 교육정책은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학에 몇몇을 더 보내느냐는 숫자놀음에 미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