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간절함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간절함은 무엇인가요?
  • 광양뉴스
  • 승인 2009.05.14 10:38
  • 호수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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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우리치과 원장

김용주 우리치과 원장
이번에 소개할 글은 대학 2년차 선배로 갓 치과대학을 졸업해 신안의 장산도라는 섬의 공중보건의사로 재직당시 선배가 진료했던 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소 무료한 섬 보건소 생활에 지쳐갈 즈음 위, 아래 틀니 제작을 이유로 보건소 치과를 방문한 70대 할머니가 계셨단다.

잔존치는 거의 없이 위, 아래 완전 틀니 제작이 필요한 케이스로 할머니에게 구강 상태 및 그에 따른 치료 계획과 치료비에 대한 설명까지 마무리 하자 할머니가 부탁이 있다며 조용히 선배를 끌어당기더란다. 흔히 있는 ‘치료비 깎아 달라는 이야기이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 줘야해” 하시더란다. 

자신도 모르게 “예?” 라고 반문한 선배.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강조해서 “꼭 예쁘게 만들어 줘야해, 한 10년은 젊어보이게…”  그렇게 해서 능력과는 무관하게 열정과 의지로 시작하기 마련인 선배의 첫 완전 틀니는 ‘예쁘고, 10년은 젊어 보이게’ 제작해야만 했단다. 다음 진료에 내원한 할머니, 다른 말은 하지도 않으신 채, 다시 한 번 ‘예쁘게, 10년 젊게’를 강조하기에 슬슬 걱정이 앞선 선배는 할머니의 기대를 조금은 낮춰보려는 의도로 이렇게 말을 했다.

 “할머니, 예쁜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나 보는 눈이 다 달라서 완벽히 만족하기 어려운 것 이예요. 그리고 틀니는 여러 한계가 있어서 더욱 그럴 수 있어요.” “그래도 나는 예쁘게 만들어 줘야 해, 이빨도 안 하려다가 50년 만에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예? 50년만에요? 그게 누군데요?” “응, 북에 있는 언니, 동생들이야.” “북에요? 근데 어떻게 만나실 수 있는데요?” “정부에서 이산가족 만남을 추진한대잖아. 신청하라고 하길래, 신청하고 기다리는 중이야.”

“저도 그 뉴스는 봐서 아는데요, 신청한다고 다 만나는 것도 아닐 텐데…” “이번에 될 것 같아. 아니 돼야 해, 안되면 안 되는데…” “.............” “만나는데 이 꼴로 가면 안 되니까, 꼭 예쁘게 만들어줘야 해, 10년은 젊어보이게” “예” 또 다시 예쁘고 10년은 젊어 보이는 틀니 제작에 대해 약속해버린 선배.

황해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서울로 왔다가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길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이곳 한적한 섬에 정착해 거의 50년을 살게 되었단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나 만날 생각은 엄두도 못 내다가, 이번에 이산가족 만남 신청을 처음하게 된 것이라고 하셨고 그러면서 꼭 이번에는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시더란다.

이후, 김영삼 정권 말기에 추진되었던 그 이산가족 상봉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고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 역시 당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일 년 뒤 육지 보건소로 나온 그 선배는 이후로 할머니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가족들을 꼭 만났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것은 그 후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수차례에 걸쳐 성사되었던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그것에 대한 할머니의 사무친 간절함. 씹는 용도가 아닌 예뻐 보이는 용도의, 심하게 말하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 단 하루용 예쁜 틀니제작을 결심하게 했던 그 간절함이 온전히 선배 자신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간절함’이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 같은 확신을 자신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