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꽃신
원숭이와 꽃신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09:34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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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렬 - 마하나임 커뮤니티 교회
원숭이가 나무위에 올라가게 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한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집에 그런대로 먹을 도토리도 부족하지 않은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너구리가 예쁜 꽃신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평소 존경해 마지 않는 원숭이에게 기꺼이 꽃신을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원숭이의 극구사양에도 사례를 거부한 채 그 신을 주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꽃신을 신어보니 처음엔 좀 답답하다 싶기도 하고 어색했지만 자꾸 신어보니 푹신한게 여간 편한게 아니었습니다. 자갈길이나 거친 길을 갈 때도 이전에 맨발로 다닐 때는 발이 아팠는데 꽃신을 신고 다녀보니 너무 편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꽃신을 신을 때마다 너구리를 생각하며 고마워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는데 어느새 꽃신이 다 헤어져서 못 신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즈음 또 너구리가 와서는 꽃신을 주었습니다. 때마침 와준 너구리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극구 사양하는 너구리에게 도토리를 조금 주었습니다. 새 꽃신을 신은 원숭이는 이전보다 더 아껴가면서 신었지만 오래지 않아 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꽃신을 가져온 너구리에게 이번엔 지난번보다 더 무겁게 도토리를 주었는데, 이전과는 달리 너구리는 별로 사양하는 기색 없이 받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원숭이는 꽃신을 신으면서 이제는 너구리에게 신세만 질 수 없으므로 손수 꽃신을 만들어 보겠노라 했지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이젠 꽃신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도토리를 한가마 들고 너구리네 집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냉랭한 너구리의 거드름과 대접을 받았지만 그래도 꽃신을 구하기 위해서 원숭이는 그런 너구리의 태도쯤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너구리는 이번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꽃신 값을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했습니다. 원숭이는 그래도 꽃신이 필요했기에 여러 가마니의 도토리를 주고서 사왔습니다. 너구리네 집을 나오면서 이번엔 기필코 꽃신을 직접 만들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다음에도 꽃신을 만들지 못하고 그렇게 원숭이네 도토리는 겨울을 나기 힘들정도로 다 떨어지고 내년치 도토리의 수확까지 저당 잡히고야 겨우 꽃신 하나를 더 얻어 신을 수 있었습니다. 그후로 원숭이는 다시는 꽃신을 사지 못했습니다. 그 꽃신이 마지막이었지요. 결국 원숭이는 사는 집마져도 다 너구리에게 넘기고 결국 나무위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젠 꽃신이 없이는 땅으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지금도 나무위에서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끔 원숭이들이 쭈구리고 앉아서 손을 만지작거리며 있는 것은 꽃신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직도 만들지 못한 미련이 남아서라나...

수입농산물이 처음엔 값싸고 좋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농업기반 전체를 뒤흔들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모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현금을 조건없이 빌려준다고 하면서 발행 받았던 카드들이 이제는 우리의 가계 전체를 옭아 매게 된다는 사실은 지금 너무도 많은 가계들이 죽지 못해 산다 하며 겪게 되는 뼈아픈 사건입니다. 정치인들이 던져준 꽃신공약이 결국 우리의 피같은 세금을 축내는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인터넷의 모든 무료 컨텐츠들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그냥 쓰는 줄 알았지만 나중엔 많은 값을 치르고 그것을 지켜야 하고 급기야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느새 우리의 것들을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꽃신들이 우리들 모르게 야금야금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꽃신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꽃신이 주는 안락함 뒤에 숨겨진 위험을 감지하고 꽃신을 아예 신지 말든지 아니면 꽃신을 직접 만들든지 또는 그것과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을 빨리 찾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요즘 복고적인 컨텐츠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욘사마의 인기비결도, 드라마나 코메디의 웃음을 주는 요소들도, 사람들이 감동하는 이야기들도 상당부분 복고적인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살기가 어려우면 과거회기본능이 꿈틀댄다고들 합니다. 아마도 지난 시절들을 돌아보며 꿈과 희망을 다시금 찾아보려는 욕망의 발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적 꿈을 꾸고 자란 그곳을 돌아보며 수구초심으로 재기의 힘을 얻어보려는 뜻도 있겠지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꿈많았던 시절 어릴적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시골교회 문을 두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서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설레임으로 물어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감회도 새롭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발걸음을 옮겨 보면 어떨까요. 밤하늘의 별, 반짝이는 트리, 귀에 쟁쟁한 캐롤, 그리고 추억의 그 잔치 속에서 많은 꽃신 때문에 지치고 힘을 잃은 우리들에게 다시금 새 힘과 꿈을 되찾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우린 많은 꽃신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원숭이처럼 조그려 앉아서 꼼지락거리기만 하지 말고 또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다시 처음처럼...
 

입력 : 2004년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