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 한관호
  • 승인 2009.07.01 22:44
  • 호수 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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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초, 초등학교 소풍 날 기억이다.
전 날 밤부터 잠을 설치고도 댓바람에 일어나 학교로 내달렸다. 짝지와 도란도란 애기를 나누며 10리 길을 걸어도 신명이 넘친다. 상주해수욕장에 닿으니 어느새 점심시간, 보물찾기 다음으로 기대되는 도시락 먹는 시간이다. 끼리끼리 둘러 앉아 모처럼 먹는 김밥, 흰 쌀밥에 반찬이라야 멸치나 꼴뚜기 볶음 따위였지만 그래도 계란 부침 하나는 턱 걸쳐져 있었다.

모두들 게걸스럽게 점심을 먹고 있는 데 유독 한 친구가 혼자 저만치서 돌아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몇 번을 불러도 오지 않아 데리러 갔더니 그 친구는 당황해하며 보자기로 도시락을 덮었다.
그 시절, 모두가 가난했지만 그 친구네는 사는 게 매우 딱했던지 우리가 밥을 싸온 스텐 도시락이 아니라 툭사발 (집에서 쓰던 밥그릇)에 보리밥이 아닌가. 게다가 반찬은 달랑 알타리 무우 김치 세 조각. 반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해 함께 점심을 먹고 우리는 부리나케 엿 장수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주머니에 두둑한 지폐(10원으로 기억)를 꺼내 엿을 사 엿치기를 한다. 비싼 사이다는 몇이서 돈을 모아 사서 먹었다.

그런데 혼자서 밥 먹던 그 친구는 먼 산만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자기 먹을 것들을 조금씩 들어 내 그 친구에게 건넸다. ‘내가 제일 많이 먹네’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 뒤에 들은 애기로 그 친구네는 평소에도 굶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학생들은 거진 중학교로 진학했지만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그 친구 뿐이랴, 중·고등학교 때도 점심시간이면 밥 대신 수도꼭지를 틀던 친구도 더러 있었다.

무료급식 예산 50%를 삭감했다가 경기 도민들로부터 그야말로 뭇매를 맞고 있는 경기도교육위원회 관련 기사를 읽으며 그 친구, 그 때가 생각났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전체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핵심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교과서와 등록금이 무상인 것처럼 점심도 마땅히 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서, 올해 2학기에는 농산어촌과 도시의 300인 이하 초등학교 무상급식, 내년 1학기에는 재정자립도가 평균 이하인 동두천·안성·이천·남양주 그리고 2학기에는 경기도 내 전체 초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위원회가 추경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무상급식 예산 171억원 가운데 50%인 85억 원을 삭감해버려 무료급식 자체가 불투명 해졌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교육위는 예산을 삭감한 이유로 현재 교육청과 지자체 지원으로 초·중·고 학생 21만4,159명이 무상급식을 받고 있다.

그러니 굶는 학생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올해만 해도 경기도 전체 초,중,고 학생들 가운데 7,952명이 급식비를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무료 급식을 신청한 학생 19만 4,748명 가운데 3만 5,029명이 탈락했다. 이들은 굶거나 어떻게든 급식비를 내야만할 처지다. 또 교육위는 ‘300인 이하인 학교에서도 형편이 되는 학생은 돈을 내게 하고 300명이 넘는 학교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을 지원하자’고 했다. 

남해신문사 기자 시절, 청소년 관련 취재를 나가면 종종 난감한 상황에 맞딱 들이곤 했다. 청소년 관련 위원회에서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 모아 위안행사를 갖는다. 이런 행사는 주로 생색내기에 다름 아니라 학생들을 모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셔트를 누르는 순간, 꼭 고개를 돌려버리는 학생들이  있다. 다시 사진을 찍어 보지만 그 현상은 여전하다. 학교에서 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행사에는 참석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받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모습이 신문에 실려 누군가 자신이 궁색한 처지란 걸 알게 되는 걸 못 견뎌한다.
한 학교에서 친구는 돈을 내고 밥을 먹고 자신은 집이 못살아 밥을 공짜로 먹는다면 그 밥은 밥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다. 

더구나 교육위는 ‘내년에 경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 그러면 무상급식을 더 이상 확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놨다고 한다. 그러자 시민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어려울수록 최소한 아이들 밥은 먹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노하고 있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지는 건 서민층이다. 빵이 없으면 고기 먹으면 될 것 아닌가 라는 현실인식이 아니라면 설혹 필자처럼 밥을 굶는 친구를 둔적이 없는 위원이라 할지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상급식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한 교육위 위원들은 집권여당에 가까운 이들이고 그 반대편에 선 김상곤 교육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라는 여론이다. 
그러니 누가 그런다. 제발, 치사하게 어른들이 아이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