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강난 틀니
두 동강난 틀니
  • 김용주 우리치과 원장
  • 승인 2009.07.09 09:17
  • 호수 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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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우리치과 원장
며칠 전 오전 진료를 막 시작 할 즈음, 치과 안내 데스크 옆 상담실에 있는데 자주 뵈어 익숙한, 하지만 뵙는 게 다소 부담스러운 할아버지께서 치과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들어 오시자마자 두 동강이 난 상악 틀니를 데스크를 맡고 있는 직원 앞에 내보이며 화를 내시는 할아버지.

“이것 보소. 이렇게 틀니가 깨지는 게 어디 있나. 내 친구들과 여행가서는 첫날 식사하다 깨져가지고 삼일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친구들 다 맛난 거 먹고 그러는데 나는 슈퍼 가서 통조림 까먹고 얼마나 서러웠는지 알기나 하나!”

진료실에 들어오셔서 치과용 의자에 앉을 때 까지 분이 안 풀리시는지 아까 했던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며 혼잣말로 이 말씀 저 말씀 하시면서 분을 토하신다. 사실 그렇게 화를 낼 만도 하신 것이 몇 년 전에 틀니를 제작한 뒤로 틀니 앞니 하나가 자꾸 빠져서 몇 번 수리를 해드렸는데 급기야 이번엔 틀니가 반으로 깨진 터였다.

틀니 앞니가 빠져 수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금가기 시작한 할아버지와 나와의 신뢰관계는 틀니가 두 동강 나면서 이젠 산산이 깨지는 느낌이다. 일단 이런 상황에선 할아버지 스스로 진정되실 때 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이 상황에서 틀니가 깨진 상황을 자꾸 물어본다거나 원인을 분석해 할아버지께 깨진 틀니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건 가히 부질없어 보인다. 오히려 어설픈 변명으로 여겨져 할아버지의 노여움만 일으킬게 뻔하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난 상악 틀니는 대개 교합(위, 아래 치열의 맞물림 상태)적인 문제로 인해 틀니에 과도한 힘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서 발생된 피로 파절로 발생한다. 특히나 아래는 치아가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부분 틀니 상태로 치열이 그리 고르질 않고 이에 맞춰 제작된 상악은 치아가 없는 완전 틀니 상태인터라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파절이 발생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 이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악 틀니 구개부(입천장부위)에 금속판을 덧대어 제작 했으면 그나마 이런 파절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여하튼 긴말 필요 없이 다시 잘 해드리겠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드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는 없다. 그 말에 진정의 기미를 보이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나선 틀니를 다시 제작하기 위한 진료에 순순히 응하신다. 다시금 점차 싹트기 시작하는 나와 할아버지와의 신뢰관계.

치과 보철 치료의 경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제작되는 터라 행여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환자로선 화가 날 수밖엔 없을게다. 물론 술자로서 보철 치료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생되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선 특별한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문제가 일어난 뒤 다시금 원인을 찾아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수밖에…

여하튼 격해진 할아버지 마음은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하고 표정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에 따라 긴장하고 답답했던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다시 틀니를 제작하기 위한 진료를 시작하면서 부디 새로 만들어질 틀니는 이런 문제가 없이, 환자와 의사 서로에게 불신의 원인이 아닌 상호 신뢰의 고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