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맞으며
8월을 맞으며
  • 한관호
  • 승인 2009.07.29 20:11
  • 호수 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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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꿈이 있는가.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꿈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거나 꿈을 꾸며 산다. 지금이사 물질만능주의가 범람하고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부자 되는 게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내일이 흐린 서민들은 로또 대박을 꿈꾸며 5천원을 기꺼이 투자해 일주일일지언정 설렘으로 버텨 나간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요즘 어린이들의 꿈은 무얼까. 예전의 초등학생들은 1위가 대통령이요 다음으로 판검사, 의사 따위를 꼽았다.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판검사는 폼 나서 좋고 의사는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부자 산다니 더할 나위 있으랴.

대통령이야 나라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헌데 지금의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은 미래 자화상으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대세 인 듯하다. 화려한 조명, 대중들의 환호, 재벌 못지않은 수입이 있으니 저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를 꿈꾼다. 무엇이던 꿈이 있는 인생은 희망이 있는 삶이 아닌가.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국어 시간에 혼, 분식을 장려하는 주제로 글짓기를 했다. 이튿날 교무실 호출을 받고 가니 한 선생님이 ‘네가 쓴 글을 교육청에 내려고 하니 원고지에 옮겨 적어라’ 했다. 선생님 옆에서 옮겨 적기를 하는 데 ‘글을 잘 쓰니 나중에 시인이 되면 좋겠구나. 책을 많이 읽어라’ 하셨다.
그날 이후로 책벌레가 되었다. 주로 위인전 나부랭이였지만 그 마저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학급문고였지만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에 나오는 시란 시는 제다 외웠다. 안톤 슈나크가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긴 수필을 지금도 듬성듬성 기억할 정도다.

그런 즈음 한 시인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꼽혔다. 시 ‘푸르른 날’에 나오는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그 단 한 구절에 반해 서정주가 우상이었다. 나이 쉰이 넘은 지금도 달달 외우는 ‘국화 옆에서’는 또 얼마나 맛 갈 나는 시인가. 별 헤는 밤의 윤동주, 청포도와 광야의 이육사, 님의 침묵의 만해 한용운도 좋았지만 ‘미당의 발가락만큼 만 돼도 소원이 없겠다’가 꿈이었다.  
헌데 그 뿐이었다. 시인을 꿈꾸면서도 공부 보다 친구들과 쏘다니기를 더 좋아했고 집도 가난해 문학에 대한 열정만 안은 체 노동자가 됐다. 헌데 그저 군대 가기 전에 밥 값 이라도 하자며 생각 없이 살던 어느 날, 마산 책사랑에서 본 시 한 편이 문학에 대한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았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 -서정주의 시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

조선인이 일본을 위해 모아 보낸 돈으로 만든 비행기를 타고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어 미군항공모함에 자살 투하한 조선인 병사를 찬양하는 시다. 조선의 처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고 조선의 국모가 일본의 한갖 잡스런 칼잽이에 난자당하고 그렇게 민족이 갈갈이 찢겨지던 시절이다.
한편으론 육사와 윤동주가 광복을 부르짖다 죽어가던 즈음에 일본의 대동아공영 야욕에 희생당한 청년의 죽음을 찬양하다니. 이어진 ‘그때는 일본이 한 백년은 갈 줄 알았다’ 던 변명 앞에서 우상은 죽었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하여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기도 했던 미당,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시인으로 한국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그, 하지만 송오장가 외에도 인보의 정신, 항공일에, 경성사단 대연습 종군기, 최 체부의 군속지원, 징병 적령기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따위의 시 6편과 수필 3편, 소설 2편 등 친일문학을 더 썼다. 더구나 노년에는 전두환 각하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까지 헌사 했다.

이 육사의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을 넘어 8월이 내일 모레다. 다가오는 광복절, 정부에서 대규모 사면을 한단다. 음주운전으로 취소당한 면허는 되살아나되 그 기록은 남듯이 역사에 지은 죄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