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개인 아닌 사회적 고려 대상으로 봐야
질병, 개인 아닌 사회적 고려 대상으로 봐야
  • 김용주 우리치과 원장
  • 승인 2009.09.17 08:56
  • 호수 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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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우리치과 원장
화물차를 운전하시는 40대 중반의 아저씨 한 분이 아래턱 우측 어금니 부위의 통증과 함께 흔들림을 이유로 치과에 내원하셨다.  이 환자는 2년 전쯤부터 잊을 만하면 불편을 호소하는 부위만 달리한 채 한 번씩 우리 치과를 찾으신다. 이번에도 그랬다. 불편을 호소하는 치아는 만성 치주 질환으로 해당 치아의 치조골이 상당량 소실된 채 급성 염증과 함께 흔들려 더는 치아를 보존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환자에게 더 이상의 치료는 큰 의미가 없고 이를 뽑는게 오히려 낫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환자는 그래도 당장 뺄 상황은 안 되니 통증만 없애 달라고 하셨다. 거기에 덧붙여 차를 길가에 주차해 놓고 온 터라 빨리 가봐야 된다고 재촉까지 하시면서…

 일단 해당 부위 급성 염증 처치와 함께 약을 처방 해드렸고, 그 후 몇 주 지나 결국 불편했던 치아는 발치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또 몇 개월 후에 이번엔 반대쪽 어금니 하나가 불편해서 오셨다. 역시 빨리 가봐야 되니 진료를 빨리해달라는 주문과 함께…

 그 치아 역시 이전에 발치했던 치아와 비슷한 상태로 불가피하게 발치가 필요해 보였다. 그날은 빨리 치료받고 나서야 하신다는 환자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선 환자의 전체 치조골 상태에 대한 x-ray 검사를 행하고 나서 현 잇몸 상태에 대한 심각성을 환자에게 말씀드렸다.

 치주염을 오랫동안 방치한 터라 점점 치조골이 녹아내리면서 하나둘씩 흔들리는 치아가 발생하였고 이대로 놔두면 몇 년 뒤에 치아가 몇 개 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며 약간 과장되게 설명 드리고선 앞으로 적극적이고 꾸준한 잇몸치료를 통해 현 치조골 상태라도 잘 유지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환자는 계속된 설명에 상황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했고 일단 해당 치아에 대한 급성 염증 처치 후 수일 내 시간을 내서 치료를 받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환자는 수일이 아닌 수주일 후 해당 치아의 발치가 필요할 때 즈음 치과에 내원하셨고 그 후 시간이 지나 이번엔 또 다른 부위의 잇몸 염증을 호소하시며 치과를 찾으신 게다.    

  일반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하다 발치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위와 같은 환자처럼 미리 상태에 대한 설명과 함께 치료의 필요성을 말씀드리고 치료에 대한 동의를 구해도 시간상의 이유로 치료를 미루다 결국 손쓰기엔 너무 늦어버리는 경우가 생길 땐 여간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원인이 환자 개개인의 인식 때문일 수도 있고, 환자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동기유발을 시키지 못한 치과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질병과 치료에 앞서 우선 일이 먼저 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의 조건, 노동 조건의 문제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리 치료의 필요성을 역설해도 당장 눈앞의 일거리를 해결해야 하는 (특히나 우리 주변의 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나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그들 삶의 조건이 나아지지 않으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라는 건 영원히 요원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질병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사회적 고려 대상으로 봐야지 않을까 싶다.

  불편을 호소하며 치과에 내원한 그 환자에게 발치를 권할 수밖에 없는 치과의사인 나와 결국 발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자.  결국, 자신의 치아를 차례대로 하나씩 다 들어내고서야 지나쳐버린 시간을 후회하며 서로를 원망하지나 않을지…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