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골프 라운딩 남의 일 아니다
부적절한 골프 라운딩 남의 일 아니다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2:51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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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골프 라운딩으로 인해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3·1절, 그것도 철도파업이 시작되던 날 한가롭게 골프를 친 이 총리에 대한 비판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형국이지만 골프 인구 200만 시대에 총리가 진작 약속한 골프를 친 게 뭐 그리 비난받을 일이냐는 동정론도 일부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같은 시기에 등산을 하면 괜찮고 골프를 하면 왜 안 되느냐"며 항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필자는 골프를 하지 못하지만 이 총리가 그날 똑같은 멤버들과 골프 대신 등산을 했다면 여론은 어땠을까.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 철도파업에 대한 대책을 구상했다"고 변명하면 분명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골프와 등산은 똑같은 운동이다. 그런데 왜 이처럼 결정적 인식의 차이를 초래하는 것일까.

골프 그 자체는 정말 재미있는 운동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총리가 '맞아 죽을 각오'를 한 듯 계속 골프에 심취하는 것을 보면 매력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재미있는 운동의 이면에는 유쾌하지 않은 사회학적 메타포(은유)가 몇 가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한국사회에서만 통용되는 폐습이다.

우선 골프는 특권의 상징이다. 골프를 치려면 돈이 많든지, 힘(지위)이 세든지, 둘 중에 하나가 필수적이다. 한국의 골프장은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된다. 비회원이 골프 한 게임(18홀)을 즐기려면 최소한 20만원이 든다고 한다. 물론 회원들은 이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칠 수 있지만 대부분 골프장의 회원권이 1억원을 상회하는 마당에 보통사람으로선 언감생심이다. 그렇다보니 소위 '백' 있는 기관의 사람들은 접대골프에 의존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제 돈 내고 골프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위를 보면 소위'머리를 얹는(처음으로 골프장에서 실제로 경기를 하는)' 순간, 골퍼는 "아,나도 이제 특권층 반열에 올랐구나"하는 묘한 도취에 빠진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종의 사회적 신분상승의 체감지수가 가장 높은 운동이 골프인가 보다.

필자가 골프를 치는 것은 아니지만 듣기로는 접대골프의 경우 골프장에선 늘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될 소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접대를 하면 그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건 당연지사.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운동 뒤 클럽 하우스에서 함께 목욕하고 식사를 하다보면 청탁이 자연스러워진다. 접대를 받은 쪽에서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다음으로 한국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내기이다. 골퍼들은 긴장도를 높여 운동의 재미를 극대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문제는 내기가 자칫 도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한 타당 1천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라는 보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뇌물을 주고 싶은 사람은 고의로 OB(경계선 밖)를 내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샷을 날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골프의 사회학적 의미는 색다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골프백을 매고 가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양면적이다. 하나는 "골프를 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높은 지위의 사람이구나"하는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도 접대를 하거나 접대를 받으러 가는 중이구나"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 양존한다.

이처럼 아직 골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부정적임을 감안하면 이 총리의 처신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등산하면 괜찮고 골프하면 문제냐"하는 문제제기 또한 비상식적이고 부도덕하다. 총리가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 손님들과 서민경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고급 룸살롱에 앉아 접대부들과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차이를 모르고 하는 말인가. 같은 시간에 똑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지만, 국민들의 눈엔 하늘과 땅의 차이로 보인다. 등산이 포장마차라면 골프는 룸살롱에 해당한다. 소주와 고급양주의 차이이기도 하다.

골프, 그 자체는 정말 멋진 운동이라고 여겨지지만 결국 골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적절한 관계와 거래가 문제이다. 골프가 참다운 운동으로 자리잡을 때라야 우리 사회도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입력 : 2006년 03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