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 경계대신 사랑과 이해를
비난과 경계대신 사랑과 이해를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2:59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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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다. 5.31 지방선거를 취재하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은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말들의 홍수 속에 묻혀 산다는 것을 실감한다.

뽑아만 주면 무엇이든 잘할 것 같은 후보들의 확신에 찬 공약 발표며, 간절하게 표심에 매달리는 읍소의 발언이며, 후보를 에워싸고 떠도는 확인되지 않는 루머와 폄훼의 표현들.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말잔치들에 식상해 진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진심으로 일하고 싶은 각오를 말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공약들을 발표하는 것이다. 비웃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후보 주변의 얘기에 대해 떠드는 것도 실은 관심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생동감 넘치고 우리가 살아있다는 삶의 냄새가 나는 일들.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는 시한부 삶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안다.
생명은 축복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꽃 한포기, 벌레 한 마리, 바람 한 점까지도 축복이며 그것을 보고 느끼는 일은 더욱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단 하루를 살아도, 생명이 있는 이에게 그 하루는 우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하늘로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언제부터인지 오늘을 마지막처럼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내일은 내일인 것. 자신에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것.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게 오늘이 있다는 것. 그리고 떠나보낸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호스피스를 거쳐 삶을 마감하는 이들을 보며 친구는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허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진실을 말하게 되더라고 했다.

내일이 없다는 절박감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늘에 대해 더 소중하고 절실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리라.
진실로 죽음을 눈앞에 둔다면 생각이 달라질 같다.

반론도 비난도 두렵지 않고, 오직 세상을 향해 전하고픈 생각을 진실 된 마음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26일 세상을 마감한 이규태 박사가 병상에서 마지막 남긴 칼럼 ‘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가 며칠이 지나도록 아리게 가슴에 남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글로 먹고 사는 놈에게 항상 무언가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라며 “마치 마라톤을 달리는 선수와도 같은 글쓰기를 마치며 독자 여러분께 제 늙은 몸을 구부려 큰절을 올립니다”라고 고별 인사를 한 이 박사의 마지막 글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내 졸고를 실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었는지 반성했다.

엊그제 미국에서도 죽음을 앞둔 80대 칼럼니스트가 감동의 글을 남겨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는 헤럴드 트리뷴의 전 칼럼니스트 아트 부크발트 씨는 기고 칼럼을 통해 “나는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일 것이다”라며 죽음을 앞둔 자신의 담담하고도 평안한 심경을 전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시간을 아끼자
그렇다. 우리는 너무 시간을 낭비하며 지낸다.
오늘이 지나가면 또다른 오늘이 오고 영원히 내일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인생은 유한하다. 만일 지금 당장 이 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라면 무엇부터 할 것인가.

남의 눈치 때문에, 남에게 비난받을까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겉치레와 거짓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내일로 미루며 게으르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선(線)은 무수한 점(點)이 계속될 때 그려지는 것이다.
인생이 선이라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점인 것이다.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여기며 지낸다는 호스피스의 친구처럼 우리도 오늘 이 순간순간 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여기며 살 일이다.
남을 대하고 말할 때 진심으로 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 진심으로 들으며, 비난과 경계 대신 사랑과 이해로, 게으름과 거짓대신 근면과 정직함으로 소중한 내 마지막 시간을 촘촘히 채울 일이다.
입력 : 2006년 0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