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6일 재창간, 지역 정론지로 ‘우뚝’
2004년 11월 6일 재창간, 지역 정론지로 ‘우뚝’
  • 이성훈
  • 승인 2009.11.05 10:24
  • 호수 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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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신문 창간 10주년, 되돌아 본 신문
광양신문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9년 10월 11일 전남도에 신문 등록을 하고 11월 6일 창간호를 발행하며 지역 소식을 담기 시작했다. 초대 발행인은 남기호 현 전남도의회 의원이고 편집주간에는 허선식(광주매일 기자), 편집국장에 차범준 씨가 맡았다.

창간호 1면 기사는 ‘광양시민상 진월면 안선남 여사 선정’이다. 신문은 1면 헤드에 ‘광양신문 창간! 21세기가 원하는 지역신문이 되겠습니다’라는 머리제목으로 시민들에게 광양신문 창간을 선언했다. 창간호는 대판 8면으로 이뤄졌으며 행정, 문화, 환경 위주로 지면이 구성됐다. 창간호에 맞춰 광양인물 열전 기획기사를 게재, 1호 인물로 매천 황현 선생을 다룬 것이 주목된다. 대부분 신문 1면은 컬러로 발행되는 것에 비해 광양신문은 창간호 전면을 흑백신문으로 발행한 것이 특이하다.

2호는 2주 뒤인 99년 11월 20일 나왔다. 남기호 초대 발행인은 2호 신문 1면 발간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신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발간사를 일부 발췌해보면 광양신문을 앞으로 △정직하고 공정한 취재를 통해 폭넓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여론의 장을 만들 것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신문을 만드는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특히 지역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신문을 만든 것은 현재 광양신문이 문화에 상당부분 지면을 할애하고 문화정책을 이끌어냄으로써 그 약속을 이어가고 있다. 3호는 12월 2일 발행됐으며 초창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주간ㆍ격주간을 반복하며 불규칙적으로 발행됐다. 2000년 1월 18일자 7호 신문이 광양신문 새천년들어 첫 번째 발행한 신문이다. 2000년 11월 23일에는 창간 1주년 특집호(27호)를 발행했다.

하지만 1주년 특집호에는 서예가 청원 홍은옥 선생의 창간 1주년 휘호만 특집 내용으로 실려 있을 뿐, 창간 특집호와 관련한 기사는 없었다. 2000년에는 ‘광양시민 칭찬 릴레이’라는 캠페인을 펼쳐 지면을 통해 시민들을 만나는 기획을 마련했다.

격주간으로 주로 발행…경영에 어려움

광양신문은 이후 격주간으로 꾸준히 발행되다 2001년 11월 15일 창간 2주년 특집호(46호)를 발행한다. 2주년 특집호 역시 8면이었지만 1주년 특집호와 달리 ‘광양신문 창간 2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도약한다’는 임직원의 결의가 들어있다. 2002년 4월 8일 남기호 발행인이 사퇴하고 허선식 편집인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취임하며 조직에 변화가 생겼다.

2002년 6월 1일자(56호) 신문에는 6.13 지방선거 특집을 1면에 담아 시장, 도의원, 시의원 출마 후보들을 게재하며 선거 특별판을 마련했다. 같은 해 10월 19일 창간 3주년 기념 특집호가 발행(62호)된다. 11월 6일이 창간일임을 감안하면 특집호가 조금 이른 것이다.

창간 3주년 특집호 화두는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광양신문이 되겠다’는 것이다. 2003년 1월 4일 66호 신문이 2003년 첫 신문으로 발행됐으며 같은해 12월 18일 창간 4주년 기념 특집호(80호)를 발행했다.

2004년 발행 중단…11월 6일 재 창간

이후 꾸준히 발행되던 광양신문은 2004년 4월 28일 87호를 끝으로 발행을 중지한다. 발행이 중단된 이유는 경영난에서였다. 누군가 선뜻 지역신문을 이끌기에는 경영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발행인을 역임했던 허선식 광주매일 기자는 “경영에 어려움이 많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허 기자는 “당시 지역신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선뜻 신문을 경영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없었다”며 “이런 이유로 부득이 신문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허 기자는 “초창기 광양신문을 창간했을 당시 인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2004년 11월 재 창간을 선언한 후 지금껏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 중단 사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광양신문은 약 5개월을 휴간 한 후, 2004년 11월 6일 김양환 발행인이 취임하면서 재 창간을 선언했다. 재 창간후 그동안 주간ㆍ격주간으로 발행됐던 광양신문은 매주 독자들에게 배달됐다.

재 창간 당시 임직원을 살펴보면 김남준 회장을 비롯해 김양환 발행인, 허선식 편집인, 서순규 이사, 김기현 감사, 이수영 편집국장, 김인수 사진부장, 김정국 문화부장, 이명순 편집기자, 안영배 기자, 변태윤 광고담당 등이다. 광양신문은 같은 해 11월 19일(88호) 재창간호를 발행하고 25일 일반 주간신문으로 등록한다. 2005년 2월 17일에는 100호를 발행했으며 같은 해 5월 2일 인터넷서비스(http://www.gynet.co.kr)를 개시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독자들에게 실시간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2006년 1월 2일 한국 ABC협회에 가입한 광양신문은 3월 20일 지면평가위원회(현 독자위원회)를 출범, 독자들로부터 신문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16면 증면…2년 연속 지발위 우선지원대상 선정

그동안 8면으로 이어오던 광양신문은 간헐적으로 12면을 증면하면서 12면 증면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 2007년 1월 4일(194호) 신문부터는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 발행, 더욱더 다양한 소식으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같은 해 1월 11일 2기 지면평가위원회가 출범했으며 2월 15일 200호를 발행하는 성과를 이뤘다. 11월 1일에는 (사)바른지역언론연대에 가입해 올바른 지역신문으로 성장하기 위한 틀을 마련했다. 2008년 1월 17일에는 23기 지면평가 위원회가 출범했으며 2월 15일 광양시 지역언론 사상 최초로 지역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신문사로 선정됐다.

광양신문은 그동안 지발위 대상 신문사로 선정되기 위해 기획기사는 물론, 각종 언론 교육, 지면개선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재 창간 후 3년 만에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은 우수 신문사로 선정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신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광양신문은 2009년 1월 1일 4기 독자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지난 2월 5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2년 연속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신문사로 선정됐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4월 2일 306호 지면부터 기존 12면에서 16면으로 증면해 11월 6일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호(336호)를 발행하기까지 꾸준히 여론 선도는 물론 발품 뛰는 기사로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한편 재창간 후 5년간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이수영 기자는 지난 3월 5일자로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했으며 이후 박주식 기자가 편집부장겸 편집국장 직무대행으로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이수영 전 편집국장은 “재 창간 후 편집국장을 맡으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지역언론을 키운다는 자부심을 갖고 신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국장은 “광양신문이 창간 1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축하를 보낸다”면서 “이제 10년을 넘어 광양시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더욱더 열심히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이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