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사람들의 즐거운 삶을 위해”
“농촌 사람들의 즐거운 삶을 위해”
  • 광양뉴스
  • 승인 2009.11.26 09:26
  • 호수 3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촌 인구 감소 위기에서 찾은 새로운 희망

하늘내 들꽃마을, 천천(天川, 은하수)이 흐르고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 장수군 천천면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 연간 1만5천명의 도시민들이 다녀가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노인들이고, 스물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산촌 마을이 ‘농촌체험마을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느 체험마을과 ‘목적’과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친환경제품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며 귀농을 준비, 지금의 하늘내 들꽃마을 운영에 불을 지핀 박일문 씨를 만나 농촌체험마을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들어봤다.

오지마을에 찾아든 도시민들의 효과

박일문 씨는 첫 마디부터 “체험마을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다면 돈도 안 되는 체험마을을 왜 하냐고 묻자 “즐겁게 살기 위해서”란다.

“요즘 시골을 보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에요. 그나마 점점 줄어들고 있죠.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생활, 무료하고 단조롭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동네에서 초상이라도 나면 ‘나는 언제 가려나’하는 걱정에 한숨만 늘어나요. 나이 들어도 희망의 기쁨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좀 더 재밌게 사는 방법이 뭐 없을까 생각하다 체험마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섶밭으로 불리던 이곳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5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로 젊은이들이 하나둘 도시로 빠져나가고 지금은 25가구만이 남았다.

“불과 20여 가구만이 남아 밀려드는 농업개발의 파고에 휩쓸리며 기약 없는 소규모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오지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 마을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마침 도시에서도 진정한 삶의 길을 찾자는 웰빙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안내책자 중 - 하늘내 들꽃마을 위원장 권자만)
체험마을 운영은 남달랐던 마음가짐만큼 그 성과도 남달랐다. 첫해 연말, 전 주민이 투자한 초기 금액의 10배를 배당받았고, 2006년 농림부 선정 전국 녹색농촌체험마을 평가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별스럽지 않은 고구마 캐기, 두부 만들기에도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는 도시민들 덕에 평생 농민이 주민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박일문 씨는 “마을 분위기가 체험마을을 운영하기 전과 천지차이로 달라졌다”며 “어르신들이 농한기면 모두 마을회관에 모여 삼시세끼를 같이 해먹고, 체험마을 수익금으로 함께 공연도 보러가는 등 사는 게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체험마을의 실질적인 운영은 박 씨와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하지만 그에 앞서 프로그램 선정과 개발, 운영방식에 대한 모든 것은 마을 주민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토론방식으로 정한다. 프로그램은 주로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 적 하고 놀았던 놀이들로 만든다. 직접 의견을 내고 운영에 참여하니 체험마을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의식, 만족감도 크다고.

공동참여, 공동분배, 투명한 운영

하늘내 들꽃마을의 연간 순이익은 3~4천만원 정도다. 수익창출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도시민들과의 교류로 점점 농산물 직거래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졌고 체험마을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수익도 높아졌다.

처음부터 법인을 설립해 지금은 모든 마을 주민(교회 목사님댁과 출퇴근만 하는 1가구를 제외한)이 30만원씩 출자해 공동 분배를 하고 있어 ‘돈 생기는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탈’도 없었다고.

체험마을의 수익은 민박과 체험비, 농산물판매비로 나뉜다. 민박은 박일문 씨가 운영하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체험학습장과 마을 공동민박, 주민 개별민박이다. 이중 주민 개별민박과 박 씨의 체험학습장 수익금의 15%는 마을공동기금으로 사용한다. 체험프로그램은 마을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진행하고 체험비의 50%는 주민 인건비로 나머지는 마을기금으로 모아진다. 이렇게 모아진 마을공동기금이 한해 3~4만원으로 이중 30%는 운영비로 적립하고 남은 기금은 연말에 마을 주민들에게 똑같이 돌아간다. 올해는 작년보다 체험객이 많아 200~250만원 가량의 배당이 기대되고 있다고.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가 중요

하늘내 들꽃마을 주민들이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선정돼 지원받은 기금 2억원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시 체험객이 와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 마을 저수지를 낚시터로 만들고, 산책길을 정비했다.

박일문 씨는 “흔히 체험마을을 시작할때새 건물부터 짓는 데에 기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며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체험마을을 올 때는 시골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오기 때문에 좋은 시설물을 만드는 것보다 농촌 그대로를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체험프로그램 개발에 더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깨끗하고 편리한 잠자리, 호화스러운 밥상을 원했다면 농촌체험마을에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박씨는 가장 농촌다운 것, 체험객들에게 마을 주민들의 마음과 농촌의 따뜻함, 풍성함, 자연이 남도록 정성을 다해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체험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젊은 사람과 두부를 만드는 것과 할머니와 두부를 만드는 것은 다르죠.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 시골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겁니다.”

하늘내 들꽃마을에서는 할머니 합창단도 있다. 물론 노래실력은 좀 떨어진다. 하지만 손자손녀, 자식뻘 되는 체험객들 앞에서 밤새 연습한 ‘고향의봄’을 부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체험객들은 옛시절 할머니 무릎 베고 듣던 자장가의 추억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고.

한편 하늘내 들꽃마을은 점점 농촌인구가 줄어가는 것을 우려해 매년 1명씩 귀농인을 받고 있다. 귀농인에게는 귀농 첫해 마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체험마을 사무장을 맡겨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게끔 한다. 이후 마을에서 조금의 땅을 내 주고 1개 체험프로그램을 전적으로 맡겨 스스로 농촌에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발위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