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 구비 섬진강 물결 따라
구비 구비 섬진강 물결 따라
  • 최인철
  • 승인 2010.02.04 09:54
  • 호수 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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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품 같은 아득한 550리 물길


가네 가네 떠나가네/찔레꽃 핀 강 길 따라 가네/가지 말라고/가지 말라고/새벽 강물 흐르고/강물 같은 우리 어매/손짓에 눈물이 앞을 가려/풀꽃 뜨려 지는 서러운 길/서울 길 가네/어매 어매 나는 가네/우리 어매 들길에 두고/만나고 헤어지는 구비 구비/섬진강 물결 따라/기적 소리 울리며/서울 길 가네<범능스님 노래 ‘섬진강’>

범능스님의 노래 섬진강이다. 스님에게도 섬진강은 만남과 이별을 뜻하는 슬픔의 물길이자 어머니 같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범능스님의 출가 전 속명은 정세현. 80년대 학번이라면 누구나 오월, 그 뜨거운 거리에서 목청껏 불렀던 노래 ‘광주출정가’를 지은 이가 바로 그다. 비록 부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서 홀연 돌아선 그가 정작 노래에 대한 한 자락 끈을 자르지 못하고 작곡하고 부른 노래 ‘섬진강’은 남도사람의 혈관 속에 스며든 섬진강의 정서와 아주 닮았다.


“길이 225㎞, 유역면적 4896㎢.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1151m)의 북쪽 1080m 지점 서쪽 계곡에서 발원,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저수지(일명 옥정호)를 이룬다. 순창군·곡성군·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섬진강의 사전적 설명이다. 모래가 곱다하여 두치강(豆恥江 또는 豆直江),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多沙江), 대사강(帶沙江), 사천(沙川), 기문하 등으로 불렸으나 고려시대 1385년(우왕 11)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는 설명이 곁들인다.

섬진강 상류에서 갈담저수지까지를 오원천(烏院川), 곡성군 고달면과 오곡면 부근을 순자강이라 부른다.
주요 지류로는 정읍시 산내면에서 합류되는 추령천을 비롯해 일중천(임실군 덕치면), 오수천(순창군 적성면), 심초천(순창군 적성면), 경천(순창군 유등면과 풍산면 경계), 옥과천(곡성군 옥과면), 요천(남원시 송동면)·수지천(남원시 송동면), 보성강(곡성군 죽곡면과 구례군 구례읍 경계), 황전천(구례군 문척면), 서시천(구례군 구례읍과 마산면 경계), 가리내(구례군 간전면), 화개천(하동군 화개면), 금천(광양시 다압면), 횡천강(하동군 하동읍)이 있다.


섬진강은 그 무엇도 배척하지 않은 채 이 산 저 산 이 계곡과 저 계곡을 두루두루 섞이면서 누누이 흘러왔던 것이다. 세월만큼이나 섬진강은 지리산과 만나고 백운산과 만나 새하얀 벚꽃 같다가, 백일홍 핏물 같다가, 가슴 쥐어뜯는 슬픔 같기도 한 수많은 역사를 강 곳곳에 가만가만 퇴적해 두었다. 멀리는 가야와 마한의 남정네들이 지배권력의 야심에 내쫓겨 뜻 없이 안타까운 목숨을 버렸을 테고 또 어쩌면 신라 가시내와 백제 사내가 가문 따위는 통째로 강물에 던져버리고 속살 젖은 사랑을 보시하다 그만 뼈마디 끊어지는 이별가락에 애간장을 태우던 곳이기도 할 터이다.

좀 더 가까이는 빼앗기고 빼앗기다 빼앗김을 운명처럼 등지웠던 농민들이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슬픈 동학의 꿈을 키우다 비린 강물에 몸을 던졌던 곳이기도 하거니와 빨치산과 군경이 좌우익이라는 악마적 시대를 온 몸으로 건너가던 곳이다. 또 범능스님 같은 이의 경우 저기 소용돌이치는 속세의 뜻을 접은 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아마득한 세상의 경계를 훌쩍 넘어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 강물이기도 할 터이다.
그 수많은 세월과 역사를 풀어놓듯 섬진강의 유역에는 840년에 창건된 신라의 고찰 쌍계사를 비롯해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칠불암, 불일암, 태안사, 도림사, 만복사, 무등암 등의 사찰과 남원 광한루와 양진정, 하동 악양정, 구례 칠의사 묘, 고성 풍계서원 및 고소성, 주성성터, 교룡산성 거기다 남한 제일지지라는 금환락지 운조루 등 사연 많고 질곡 많은 유적들이 여전히 옛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하여 마침내 섬진강은 오늘도 천 년 전 옛 물길을 그대로 국립공원 지리산과 백운산이 만나 토해 놓은 넓은 구릉을 따라 깊은 너울 속으로 뒤척이다 망덕포구 아련한 남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은 시각적이다. 흐르는 내내 산 빛의 그늘을 안고 흘러가는 몇 안 되는 강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지아비 같은 지리산이 산 빛을 바꿀 때마다 강물 빛을 바꾼다. 흘러드는 굽이굽이 강촌마을의 풍경도, 저녁노을과 마을의 굴뚝연기도, 어린아이 뒤를 따라 뛰어가는 강아지와 강 길을 따라 시절마다 얌전히 꽃대를 밀어 올리는 들꽃들을 품에 안고 강은 도란도란 흘러간다.

섬진강은 또 청각적이다. 가끔은 은어와 연어떼가 물길을 차고 뛰어오르는 소리, 깊은 산 골골 물길이 흘러드는 소리, 재첩 잡이 아낙들의 노랫가락도 해초롬이 안고 흐른다. 기차가 들고나는 전라선 역마다 떠남과 만남의 눈물소리 혹은, 곡성 난장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산과 강 그늘 속에 고즈넉이 내려앉은 마을마다 밥 먹고 세수하고, 싸우고 어루만지는 소리,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이부자리 펴고 누운 새신랑 새색시 사랑 나누는 소리도 섬진강 맑은 물은 안고 흐른다.


그러나 강은 보여주고 들려주되 스스로 가늠을 내리지 않는다. 썩은 살점들을 안은 채, 사람들이 버린 욕망과 욕심의 찌꺼기들이 물길을 거슬러 비린 칼끝을 들이대도 속엣것들 가만가만 보듬어 자리를 내어준다. 제 죄인 양, 사람 사는 마을이 흘려보낸 모든 것을 다만 묵묵히 안고, 가끔은 제 스스로도 어쩔 수 없어서 아픈 물몸을 뒤집기도 하였으나 내처 버릴 수 없는 천형(天刑)처럼 원망 따위는 애초에 지니지도 않았다. 그래서 섬진강은 어머니의 강이다.

강이 막바지에 다다라 한 숨 고를 즈음 화두가 깨지듯 펼쳐지는 곳, 망덕포구. 550리 길을 흘러 생채기를 잠시 맡기는 곳. 이를 테면 망덕포구는 강이 마지막으로 밥 한 공기 든든하게 얻어먹으며 바다와 만나기 전 숨고르기를 하는 곳이다. 여기 저기 몸에 박힌 타박상과 더부룩한 소화 불량성 언어들이 남긴 내상도 치료해 주는 간이보건소다. 망덕포구는 봄이면 벚꽃이 바람에 눈(雪)길을 내고, 여름이면, 젊어 죽은 울 아버지 눈물점 같은 개망초꽃과 원추리가 한 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그러나 망덕포구에는 꽃보다도 더 많은 게 있다. 그래 물이다. 그래 맑은 물이다. 산 골골 마음 깊은 나무가 욕심 버리듯 내 놓은 물이 모여드는 종착지다. 물길은 물길을 만나 좀 더 큰 물길을 만들고, 그리운 님 찾아가듯 바다를 만나는 여정을 서두른다. 물이 흘러드는 곳에 생명이 산다. 은어가 살고 참게가 살고 다슬기 살고 참메기가 살고 고동이 살고 피라미가 살고 버들치가 살고 산천어가 산다. 이리 깊게 사랑할 줄 아는 탓에 강물은 생명을 낳는 이다. 망덕포구가 토해놓은 이 물길을 만나 강은 죽지 않고 영원을 이어간다. 강과 바다가 불이(不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