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슬픈 역사 안고 흐르는 산청 중산리 계곡
아름답고 슬픈 역사 안고 흐르는 산청 중산리 계곡
  • 최인철
  • 승인 2010.03.04 09:46
  • 호수 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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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아래 안개바다

굵은 빗줄기 소리에 잠을 깨고 잠시 동안거 중인 산 중 처사처럼 빗소리에 기대앉아 사각거리는 봄비 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는 장중한 계곡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와 섞여 잠시 뱃속에 높낮이 높은 물이랑을 토해놓는다. 깊은 산중에는 굽이굽이 안개가 점령한다.

안개는 산 아래 마을과 산 중의 경계를 허물고 지리산과 세속을 모두 한 몸으로 만든다. 시원의 세계가 창문 밖 세상에 펼쳐지는 천왕봉 아래 마을 중산리의 아침은 우주 이전의 영역에 속하는 세계다.

지리산 자락에서 맞은 3월 첫 비는 맑고 상쾌하다. 겨울의 차가운 한기가 뼈 속까지 시린 것이라면 3월의 새벽은 나른한 정신과 잔뜩 물러진 내면의 긴장감을 바짝 일깨우는 맑은 기운이다. 안개가 지배하는 지리산은 방장산이라 불리는 그 이름처럼 석가가 지닌 신묘한 사상을 담은 듯 깨달음의 깊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백두산의 맥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으니 사람으로 치면 대동맥을 따라 한 핏줄을 타고 도는 붉은 피다.

20년 만에 찾은 중산리다. 지리산 종주는 매번 구례 화엄사 코스를 올랐던 탓에 중산리는 지리산행에 있어 천왕봉으로 곧바로 오르는 일종의 지름길 코스였으나 게으름이 산을 멀리 하게 만든 세월이 층층이 흘러 중산리를 다시 찾은 세월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사람사는 마을은 변했으나 중산리 밑뿌리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은 그대로다. 그 가운데 어느 곳보다 물이 맑은 곳이 중산리.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과 경호강, 황천강을 이룬다. 하지만 중산리의 아름다움은 물도 물이거니와 온 산천을 둘러싼 안개에 있다. 물이 많으니 안개도 많은 것이다. 그것도 온 골골을 뒤덮은 대숲에 이는 안개다. 안개는 대숲의 여린 잎을 따라 자꾸만 천왕봉을 오르고 그런 날이면 지리산은 끝내 안개 속에 잠겨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리산은 수 십 개의 얼굴을 감춘 산이다. 또 수 십 갈래 길로 나 있는 많은 길을 품었고 많은 마을을 품고 많은 사람을 품고 있는, 입산할 때 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지리산내의 훌륭한 여행지가 아닐 수 없다.

천왕봉 바투 접한 중산리 등반코스

중산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품고 있는 산청군 시천면의 가장 중요한 곳으로 유명한 중산리계곡과 천왕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지리산 최단거리 코스인 중산리 코스가 시작되는 기점이다. 우선 지리산 국립공원내의 천왕봉 등반을 위해 전국의 산악인이 찾는 중산리 코스는 중산리에서 칼바위-망바위-법계사-천왕봉 코스로 11킬로미터 거리에 약간 급경사인 관계로 도보 4시간이 소요되는 산악등반 전문코스다.

특히 이 코스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자리 잡은 법계사가 있다. 천왕봉과는 불과 3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해발 1500미터에 위치해 있다. 뛰어난 지리산 풍경을 가슴 속에 화인처럼 담을 수 있는 천오백년의 세월을 품은 역사적인 절집이다. 법계사는 지리산의 영광과 상처를 온몸으로 같이 겪은 사찰이다.

1908년 일제에 항거한 의병의 본거지인 탓에 일제에 의해 소실됐고 결정적으로 1948년에 지리산 빨치산의 활동시기와 맞물려 다시 한번 소실되는 등 뼈아픈 역사적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의 수호사찰이다.
그 만큼 지리산과 밀접한 역사의 궤를 같이 해 온 사찰이다. 그렇게 지리산을 오르고 나면 그 정상에서 감격에 감격을 하고 일년 중에 며칠만 일출의 장관을 나타낸다는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모든 것을 내 손에 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중산리는 또 볼 만한 주변 관광지와 여행 꺼리가 많은 복 받은 땅이다.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찾는 곳이어서 생기 넘치는 여행지다. 첫째 조선시대 중기의 실천유학자이셨던 남명 조식선생의 유적지가 산적해 있다. 덕천서원과 세심정, 남명조식선생묘역, 산천재가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또 1948년에서 1954년까지 있었던 지리산 빨치산을 잡기 위해 국군 9사단과 11사단이 지리산에 주둔하면서 공비토벌이라는 미명에 많은 군인과 빨치산이 죽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지리산 자락의 주민들이 역시 이유 없이 학살됐던 역사를 담고 있는 지리산 빨치산토벌전시관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남북분단의 아픈 현실을 뼈아프게 되새김질 하고 있다.

이렇게 지리산은 풍류와 저항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곳이다. 단순히 자연의 현장이 아닌 삶의 현장이었고 고통의 현장이었고 역사의 현장이었던 곳이다. 중산리는 그래서 가슴으로 무언가를 전달해 주는 아련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땅이다.

예스런 흙담길 남사예담촌

중산리 가는 길도 아름다운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묻혀 있다. 특히 남사 예담촌은 중산리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흙담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전통 한옥마을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산촌 체험마을이기도 하거니와 마을 전체가 한옥 기와집으로 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재 그 자체다.

마을 입구에는 3백년 된 회화나무가 굽어진 허리로 버티고서 사람들을 반기면서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돌담길은 산책에 여유를 듬뿍 안겨준다. 굽이친 돌담을 돌아 들어가면 전통 한옥인 최 씨 고가가 나타나는데 남부지방 사대부 한옥형식을 충실히 따라 옛집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정교하고 섬세한 문살과 처마 밑 예스런 등잔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곳, 골목마다 담장들은 호박돌과 진흙을 이겨 쌓아두고 기와로 마무리를 한 모양새가 투박하지만 정겹고, 어설프지만 우리네 얼굴 같아 오히려 정감 가는 마을이다. 서재로 쓰이던 사효제 앞마당의 향나무는 압도적인 크기와 멋스런 자태로 시선을 끌고 개국공신교서를 보관했던 별묘와 이동서당, 각 문중의 서재 등 중요 문화재자료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비구니 염원을 안고 있는 대원사

중산리 가는 길에는 이밖에 문익점 목면시배유지와 성철 큰스님 생가터, 비구니승들이 용맹정진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 대원사 등 많은 볼거리가 많다. 특히 대원사는 정갈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사람을 부르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을 간직한 채 바위틈을 흐르는 청정한 물소리와 더불어 비구니들의 맑은 미소를 벗하는 곳이다.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대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양산 석남사, 예산의 견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대원사로 들어가는 길은 완만한 계곡과 금강송이라 불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선계에 이르기 위한 길목으로 착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원사는 ‘방장산대원사(方丈山大源寺)’라고 쓴 일주문이 방문객을 반긴다. 단청의 화려함과 크기의 웅장함이 눈길을 끈다.

안개가 점령한 바다, 중산리. 중산리로 가는 길은 지리산과 바투 만나는 길이며, 역사와 만나는 길이다. 또 선조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은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산리 길에 서면 자꾸만 안개가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끌어당긴다. 나그네는 안개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