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흥과 소리 제대로 살렸다
광양의 흥과 소리 제대로 살렸다
  • 최인철
  • 승인 2010.03.04 09:57
  • 호수 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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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국악과 입학…성장 돋보여


남해성의 대를 잇는 국악신예 김완아 양

흥부가의 가장 흥겨운 대목 가운데 하나인 화초장 타령이 울려퍼지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여기저기서 추임새가 터져 나오고 “얼씨구” “좋다” “잘한다” 수많은 감탄사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관객들은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오는 대목에서는 같이 분노를 토해냈고 흥부가 박을 타는 장면에서는 같이 기뻐 손뼉을 쳤다. 놀부가 박을 타다 그동안 악행을 징치당할 때는 관객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연신 지었고 이윽고 놀부가 옛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을 하는 장면에 이르자 “잘했다. 잘했어”는 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이미 흥부가 됐다가 놀부가 됐다가 놀부 마누라가 됐다가 철없는 흥부의 열 두 아이들이 됐다가 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감정들이 들썩였다.

관객들을 사로잡은 이는 다름 아닌 열 아홉 살의 앳된 처녀다. 아직 소리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으되 소리로 가고자 하는 가슴 절절한 마음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소리로 가는 먼 길 앞에 선 이 열 아홉 살 처녀의 목은 구성졌고 흥부가 떠나는 대목에서는 피를 토하듯 아픔이 묻어났다.

손짓과 몸짓이 소리와 합쳐져 하나가 됐다. 눈물이 나는 대목에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박을 타 금은보화가 연달아 터져 나오는 대목에서는 그동안 설움 따위는 잊고 기쁨에 떠는 흥부가족들의 표정이 어른거렸다. 처녀는 다른 판소리 마당에 비해 익살스러운 흥부가의 특징을 거친 파도와 잔잔한 강가를 넘다들며 잘 살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해학성이 두드러지는 흥부가는 소리(노래)보다는 아니리(말)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판소리에 비해 큰 편이다. 이를 ‘재담소리’라고 하는데 한민족의 웃음이 고스란하다.

움찔움찔 덩실덩실 대는 우리네 삶의 가락이 처녀의 입과 몸을 통해서 터져 나올 때마다 관객들의 눈빛이 빛났던 까닭은 소리꾼이나 가락을 치는 고수꾼을 넘어 관객들에게도 반만년 너른 세월을 피를 타고 전해온 한민족의 흥과 리듬이 다 같이 공유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이날 주인공은 소리꾼의 길에 접어든 김완아 양이다. 광양읍 출신인 그는 전주예술고등학교를 올해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이다. 아직 선이 완성되지 않는 완아 양의 얼굴에서 앳됨이 여전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리꾼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 집념은 온 몸에서 확연히 전해져 온다.

판소리에 빠져 전주예고 국악과에 진학하며 여러 차례 경연대회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완아 양. 마동 출신의 이복순 씨와 태인동 출신으로 제12회 창원야철전국국악대전에서 대회 최고상인 종합대상을 수상한 도살풀이춤의 1인자 박일자(48)씨를 비롯 남해성 국창에게 수궁가를 사사받고 한국 판소리 보존회 순천지부장인 마동 출신의 황철환 씨, 임방울 국악제 전국대회 판소리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태인동 출신의 김유진 씨, 송만갑 판소리보존회 판소리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송현숙 씨, 송만갑 전국 국악경연대회 대상과 최근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흥보가 완창발표회를 가진 옥룡면 초암마을 출신의 이연화 씨 등과 함께 광양지역이 낳은 명창 남해성을 이어 받고 있는 신예다.

그가 오늘 완창한 흥부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명창 조통달 선생으로부터 직접 사사를 받은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그의 흥부가 완창발표회에는 오랫동안 지도해 온 인간문화재 조통달 선생과 유준열 전북대 교수가 참석했고 같은 문하생으로 국악신동으로 잘 알려진 유태평양 군이 고수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