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고 돌아오는 아름다운 추억
길, 떠나고 돌아오는 아름다운 추억
  • 최인철
  • 승인 2010.04.05 09:38
  • 호수 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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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정국, 길을 꿈꾸다


추산 가는 길에 비가 옵니다. 봄비가 잦은 요즘이지요. 잦은 봄비 탓에 날씨가 사뭇 매서워졌지만 동곡과 추산의 갈림길에 이르면 물벚나무가 비속에도 여리고 순박한 분홍색 꽃망울을 세상 곁에 내어놓는, 어쩔 수 없는 봄날입니다.

백운산이 구름이 추는 춤에 몸을 비틀고 연푸른 산록이 부끄러운지 자꾸만 구름 속에 얼굴을 감추었다가 다시 설핏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대는 시늉이 사뭇 마음 밭 한 곁도 천천히 봄비에 젖어들지요. 놓임과 붙잡음이 뒤섞인 길 위에서 잠깐 서서 떠올리는 헛생각에도 그렇게 봄비는 내리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추산 가는 길은 몽환(夢幻)스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먹빛을 빚어 만든 수묵화처럼 산은 천연의 색을 버려 흑백의 세계에 몸을 맡기고 사람의 세계는 고요해집니다. 이럴 즈음이면 눈은 아련한 그리움이 담기고 산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에는 허물없는 여백의 공간이 비운 듯 가득 차 있기 마련입니다.

추산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이물이 없는 속과 비속을 모두 안고 가는 산수화 한 폭이지요.
잠시 길 위에서 만난 인연과 헤어짐을 생각합니다. 길은 소통입니다. 그러나 길은 머물지 않기 위해 마련된 운명을 지녔으므로 길은 또 떠남을 의미합니다. 길은 또 돌아옴 입니다. 길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므로 죽음과 삶의 경계가 억겁의 세월을 순환하듯 떠남과 만남이 모두 한통속인 뜻을 버리지 않습니다.

흔히들 같은 길을 가는 동무를 도반이라 이르지요. 풀이하면 길동무 쯤 되겠지요. 불가에서는 한 스승의 법을 이어받는 제자들을 도반이라 한다지만 그리 대단할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스승쯤이야 구경천을 꿰뚫은 큰 스님이 아니더라도 아낌없이 베푸는 산과 물, 자연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니 당신과 내가 지금 삶이라는 이유로 걸어가는 이 발걸음이 어찌 도반이라 일컫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길 위에서 만나고 길 위에서 헤어진 사람들과 흙과 풀과 길 위에 사는 조그만 생명들이 어찌 다 도반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 이르기를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고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고 했다지요 아마. 또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고 했지요.

가되 오는 일, 오되 가는 일, 바로 길의 운명을 말하는 게 아닌지요. 솔로몬의 허무가 사뭇 염세적이기까지 하지만 삶의 종국에서 마침내 보고 깨달은 이치가 불법의 회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나는 지금 길 위의 풍경에 천착하는 한국화가 김정국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의 호가 추산이니 추산을 보러 추산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오래도록 이 길을 보았으니 낯설을 바가 전혀 없지요.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탈입니다.

오래 전부터 아는 그는 참 순수한 사람입니다. 아니 참 순진한 사람입니다. 소위 예술 따위 허명에 미친 사람들이 흔히 가진 고집을 넘은 아집을 그에게서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좀 철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 일쑤인 사람입니다.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단순성이 그에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복잡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야 복잡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일이되 그는 그 단순함으로 인해 자유를 얻는 것 같습니다.

불끈 성질이 나면 성질을 내고 슬프면 슬퍼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재미나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배통으로 한바탕 웃으면 그만입니다. 고단한 서울생활을 접고 내려오면서 물질적 풍요는 그에게서 당연하다는 듯 멀어진 지 오래이지만, 그리하여 가족과도 동 떨어져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사는 삶이 익숙한 그이지만 단순함으로 인한 그 자유를 그는 결코 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그를 무능한 쯤으로 치부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추산은 유폐된 듯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만족스러운 자유를 틀어쥐고 살고 있습니다.

화가 김정국은 “가장임을 포기했다는 가족들의 따가운 질책을 듣기는 하지만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면서 생이 자유로워졌다”며 “고향에 와서 생활하면서 유유자적의 삶이 좋다”고 무위자연의 삶에 만족함을 나타냅니다.

앞서 말했듯 추산은 길에 천작하는 작가입니다. 길은 언제나 그의 화폭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소재이지요. 또 옛 것에 대한 추억을 가득 담고 있는 화선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옛 시골길의 아름다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추산은 “지금은 길들이 변했지만 그 옛날 버드나무가 한적하게 바람결에 흔들리는 길들을 자주 떠올린다”며 “흙길을 걸어가다 버스가 지나가면 자욱이 피어오르는 먼지를 피해 등을 돌리고 한참이나 서 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숨길 수 없다”고 회상에 젖는어듭니다.

특히 “길동무가 있으면 그 길이 힘든 줄 모르지만 혼자 가는 그 먼 길을 걸어갈 때는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눈가가 촉촉이 젖습니다. 그 옛날 햇볕 쏟아지는 길. 지루한 시골길. 친구들과 떠들면서 가는 길, 혼자 가는 길, 굽이굽이 가도 가도 줄지 않는 길, 추울 때는 추워서 여름에는 땡볕에 힘들었던 옛길을 떠올리는 탓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힘들게 걸었던 길이지만 어른이 돼서는 아름다운 단상일 뿐이지요.

길은 숱한 사람들이 걷다가 명멸해 가는 곳입니다. 특히 그는 길의 구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길의 의미가 주는 소중함에 젖어 삽니다. 처음에는 그도 한국화에 서양화기법을 도입해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한국화가 주는 먹빛을 잊을 수가 없었지요. 먹과 여백이 주는 한국화의 다양성은 무한하다고 추산은 생각합니다.

그는 “역시 한국화는 화면이 화선지를 쓰는 한 가장 특징적인 것이 물과 먹이 가장 잘 어울린다. 화선지와 먹의 단백함의 조화가 가장 큰 매력이다”며 “수묵화만으로도 작가가 지난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는 것이 즐겁다”고 웃습니다.

그는 현재 길과 수묵화가 지닌 여백의 무한함에 빠져있지요. 무엇보다 고향 백운산이 지닌 자연은 위대한 소재입니다. 고향 땅의 길과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따뜻하기만 합니다. 그가 자꾸만 고향에 눈을 돌리는 이유도 바로 그런 탓일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