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아낸 수묵 ‘그 아름다운 세계’
자연을 담아낸 수묵 ‘그 아름다운 세계’
  • 최인철
  • 승인 2010.04.26 09:44
  • 호수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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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빛에 눈멀고 취한 청남 백용운과의 만남

동양의 미술은 선과 여백을 중시하고 먹의 농담에 의한 효과에 미쳐 있다. 내면의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운필에 따른 효과, 먹색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해 수묵화의 운치를 즐긴 탓이다. 광양문화예술회관에 아주 특별한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전시되고 있는 ‘청남 백용운 한국화 초대전’이라는 이름의 그림전이다. 한국화가 백운용을 그의 전시현장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깐깐하다는 것이다. 예술과 신념 사이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품 탓일 게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 작품에 완성은 없다고. 그래서 자기작품에 대해 자화자찬하며 만족감을 갖는 것은 금물이라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날마다 작품을 실습하며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란 시작에서부터 신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자기작품에 대해 해탈해야 한다고 선인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여전히 구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찾아 버린 사람이 아닌 것이다. 첫 느낌에서 읽었던 깐깐함은 바로 거기에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작가정신이 구함에 있다는 것은 씨줄과 날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항상 채근하는 상태인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청남 백용운. 그는 광양시 골약면 금곡마을에서 1951년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친구들로부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그림의 소질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공책이라는 공책에 죄다 그림으로 도배를 할 정도였다는 게 그 시절을 회상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청남은 늦게 한국화단을 이끌어가는 산실인 홍익대학교에서 한국화, 그중에서도 수목화를 익혔다. 당시 한국 수묵화의 거장 한태진과 한진만 교수로부터다. 하지만 그림을 천직으로 하기까지 그는 어려운 길을 많이 돌아왔다. 중졸에다 검정고시를 거쳐 말단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수묵의 세계로 주저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청남은 전통 수묵에서 채색, 인물, 화조, 영묘 등등 두루 섭렵하며 자신만의 땅을 개척해 가고 있다. 전통과 현대라는 경계를 허물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그의 붓은 그 같은 편견으로부터 일찌감치 자유를 얻었다.

청남은 “수묵을 배우면서 먹의 신비함을 느낀다. 먹은 본래 단색이지만 물 배합의 가감에 의한 먹의 농담에 따라 오방색을 낼 수가 있다”며 “먹은 한 가지 빛이 아니라 그 속엔 모든 빛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회화는 노장의 도가사상과 공자의 유가사상 및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선가사상이 회화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묵은 색은 없지만 우주 만물의 근원을 내포한다. 상징적 경지를 함유하는 세계가 한국화, 그것도 수묵화의 중심에 있어 온 것이다. 수묵화의 특징인 사의성과 초월성, 함축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여백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무와 허의 공간으로부터 형상과 붓의 미학인 여백은 동양사상을 집약하는 수묵 미학의 전제가 됐다.

이것은 곧 외형보다는 내재적인 의취를 중시하는 수묵화의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특징이다. 나아가 묘사 형체와 혼연히 통일을 이루어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닌 비워진 공간으로도 그려진 부분을 초월하게 되는 여백. 여백이 갖는 적막감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무엇을 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하는 동양의 마음이다. 여백 속에서 긴장감의 영원성을 유지하게 된다.

청남의 사상은 그의 그림 속에 고스란하다. 역시 자연주의에 맞닿아 있는 그의 시선이 이를 증명한다. 산수가 곳곳에 있고 수묵의 농담과 여백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백운의 정신도 스며있다. 이번 전시작품인 ‘설후산가’나 ‘한가로움’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한국의 정신, 즉 자연주의 정신과 일통한다.

그런 탓에 청남도 “나무와 숲과 물길을 따라가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런 자연들이 말하는 생명의 비밀을 놓치지 않고 감성에 담아서 묘사해 나갈 때 생명력을 얻는다”며 “한국적인 서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묵화에 내재된 정신성 단순한 재료의 정신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수묵화는 수묵을 통한 동양의 고유한 정신을 추적하고 그 정신이 오늘날의 한국회화의 방향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문화적 자각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새로운 예술적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작가 자신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기술적, 표현적 영역의 것이 아니라 기술적 표현적 차원을 넘어 정신적 영역, 즉 수목화를 통해 도달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문화적 뿌리를 캐내는 작업이다.  끊임없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작업이 절실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렇듯 수묵화는 당대를 초월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