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 이후
5.31 지방선거 이후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5:47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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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총선에서 ‘탄핵역풍’에 힘입어 손쉽게 국회과반의석을 경험했던 열린우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태로 휘몰아친 소위 ‘박풍’까지 겹쳐 속수무책이었다. 바람에 맞대응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기보다는 집권여당이 감당해야할 자업자득의 원죄적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이번 지선공간에서 5·20박풍은 인물과 정책선거의 싹을 일거에 잠재우고, ‘하나마나’한 정당선거로 몰아가는 일정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불과 1%의 인지도로 출발하여 상대후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도에 머물던 후보자가 10여일 만에 극적으로 당선된 사례는 ‘바람’에 의한 ‘감성선거’로밖에 더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의 특징 중의 하나인 지방의 중앙정치권 예속 강화는 그 파장이 자못 클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기초의회의 정당공천제 도입과 중선거구제를 대부분 2인 선거구제로 재단한 게리맨더링은 향후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더불어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에 따른 폐단이 크게 노정되는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기초단위 선거마저도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입증된 결과는 지역주의와 공천헌금에 따른 금권선거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고 구조화하는 악순환의 한 단면으로 볼 수가 있다.

다음으로 대선국면에 접어들면서 더욱 강화될 중앙정치권의 입김은 지방권력을 줄 세우기 대상쯤으로 여겨 집권과 집중의 본능에 따라 겨우 맹아단계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지방민의 염원마저도 일거에 잠재워버릴 우려가 크다. 나아가 유권자의 ‘표’에 의존하는 정치권의 속성으로 볼 때, 호남권의 표심을 노릴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한편 이번 선거를 계기로 공직선거법을 비롯한 관련 제도와 운용의 개선 및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언급한 공천제 및 선거구제뿐만 아니라 홍보와 토론회를 통한 후보자 변별 방식의 개선필요성도 한 예다. 토론회의 경우 합동유세를 하지 않는 대신 방송대담·토론회 또는 연설을 기초단체장까지 법정화하고 있으나, 지역의 여건을 들어 기초지자체장의 경우 대부분 후보의 일방적 연설로 치러져 변별력을 저해하고 정책선거의 흐름에 배치되는 사례가 그것이다. 선관위의 소극적이고 편의적 업무수행의 결과로도 보인다.

이제는 지방의 주민이 나설 차례선거초반 ‘정책선거’니, ‘매니페스토’운동이니 하던 분위기가 선거의 본질에서 벗어난 변수들로 인해 걸기대가 되어버렸으나, 이를 계기로 선거주체 모두에게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각인시킨 긍정적 측면은 분명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여년의 자치경험에는 순기능적 평가와 더불어 토호세력에 의한 지방권력의 독점현상 및 그들에 의한 ‘개발과 전시행정’에 실망한 측면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결과 나타난 지방정부의 일당독점 강화현상은 오히려 민주적 지방자치를 크게 왜곡하고 약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제 무심코 잃어버렸거나 빼앗겨버린 ‘지방’의 권리를 되찾는 것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당선자들의 몫이기도 하며, 지방 주민의 온전한 몫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민이 스스로 각성하여 지방자치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견제와 감시의 역할은 주민의 책무로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또한 시민사회의 전문성과 도덕성에 기반한 적극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고 요구되고 있다. 더불어 내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주민소환제’의 효능도 기대된다.
입력 : 2006년 06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