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생가 철저한 고증 필요
매천생가 철저한 고증 필요
  • 지정운
  • 승인 2010.09.13 09:17
  • 호수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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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액 등 허점 투성이 …100주년 추모 행사에만 ‘급급’

매천 황현 선생 순국 100주년을 맞아 광양시가 대대적인 추모식과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매천 선생의 기개와 정신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지만 정작 매천 생가에 설치된 시설물에서 오류가 발견되고 있어 철저한 고증과 세심한 관리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매천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이 있기 사흘 전인 지난 7일, 시민의 제보를 받고 취재 차 둘러본 매천 생가에 걸린 편액과 안내판, 액자 등에서 많은 글자가 잘못 새겨져 있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버젓이 실려있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매천 생가는 대문을 들어서면 매천헌이란 5칸 건물이 나타나고 4개의 전면 기둥엔 매천이 41세 때 지은 ‘반곡 이 씨 집에서 기거하며’라는 시가 기둥마다 한 구절씩 걸려있는데, 세 번째 기둥의 첫 글자인 감나무 시자가 柑(귤 감)자로 잘못 새겨져 있었다. 이 글자는 10일 추모식에 앞서 정정됐다.
이뿐만 아니다. 매천 선생의 영정 위에 걸린 편액에는 절명시가 새겨져 있다. 매천이 자결하면서 남긴〈절명시(絶命詩)〉는 장지연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경남일보 필화 사건의 원인이 된다.
이 절명시 첫수의 捐(버릴 연)자가 엉뚱한 글자로 새겨졌으며, 두 번째 수의 掩(가릴 엄)자가 어두울 암자로 바뀌어 있다. 세 번째 수에서는 원문의 가릴, 숨길 엄자 대신 掩(가릴 엄)자를 새겨 넣었다.

생가에 내걸린 액자도 오류투성이다. 특히 매천의 절명시 원문과 이를 해석해 걸어둔 액자에서는 원문과 다른 글자가 10여개 이상 발견돼 과연 고증을 거쳤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이 액자는 10일 추모식 후 생가를 찾은 이성웅 시장 등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문제점을 제기하자 재빨리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생가 마당에 설치해 놓은 절명시 4수와 주련 해석판에서도 오류는 발견됐다.

절명시 두 번째 수의 復(다시 부)자를 ‘복’자로 음을 달았으며, 세 번째 수의 잠길 침자도 沈(잠길 침)자로 새겨, 원문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 아래의 주련 설명에서도 감나무 시자 대신 柑(귤 감)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이외에 대문 밖의 안내판도 황현 선생이 황희 정승의 7대 손이라 적혀져 있었지만, 최근 잘못됐다는 지적에 따라 15대 손으로 정정했다.

제보자 A씨는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 앞에 우리의 수준을 노출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창피했다”며 “당국의 철저한 고증과 아울러 세심한 관리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시민들의 지적을 알고 있다”며 “차후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 고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