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폐지모아 선행 실천
새벽까지 폐지모아 선행 실천
  • 지정운
  • 승인 2011.05.02 09:17
  • 호수 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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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람들- 칠성초 야간 경비원 전정환 씨
초등학교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학교에서 나온 폐 박스 등을 모아 판 돈으로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돕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선행의 주인공은 광양 칠성초등학교 야간 경비원 전정환(67)씨로, 2달에 한 번씩 학교 측에 아무런 조건없이 백미 5포(20Kg)를 전달해 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 30분, 칠성 초등학교 교정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회색 제복의 학교 지킴이 전정환 씨를 만나 가슴 따듯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 씨의 선행은 지난해 추석 무렵부터 시작됐다. 전 씨는 “처음에는 매달 5포 씩을 전달하려고 맘 먹었는데 도저히 힘에 부쳐 2달에 한번으로 목표를 바꿨다”고 웃으며 말했다.

쌀을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터이다. 그는 “지금은 모든 학생이 무상 급식을 받지만 얼마 전만 해도 급식비가 없어 몇 달째 밀린 학생이 있다는 말을 행정실 직원을 통해 들었다”며 “어려웠던 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학교 말고도 광양읍 칠성리 호북마을에도 쌀 3포를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학교에 전달하는 것과 합치면 모두 8포를 정기적으로 내놓는 셈이다.

쌀 8포를 장만하려면 요즘 시세로 계산할 때 3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전 씨가 학교에서 나오는 폐 박스와 종이류, 빈병들을 수거해 팔아 모은 돈은 10만 원이 채 안된다.

조금이라도 더 폐 박스를 모으기 위해 야간 경비가 끝나는 밤 10시 이후엔 손수레를 끌고 광양읍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동작 빠르고 힘센 젊은이들에게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전 씨의 모습에 감동받아 폐 박스 등을 챙겨주는 고마운 분들이 아직 있다고 그는 말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면 전씨가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새벽 1시를 훌쩍 넘길 때가 많다. 그가 스스로 어려운 일을 찾아 나선 것은 나눔의 보람 때문이다.

전 씨는 “요즘도 45년 생 동갑내기 친구들이 이유를 물어 올 때가 있다”며 “그럴 때면 그저 남을 돕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전 씨의 친구는 문승표 광양시사랑나눔복지재단 이사장과 광양교통의 정영식 씨 등이 있다.

그렇다면 전 씨의 월급은 얼마일까. 그는 매달 71만원을 손에 쥔다. 지난해에는 80여 만 원이었지만 이마저 올해 들어 줄었다. 쌀 8포를 사기 위해서는 폐 박스 등을 주워 마련한 10만 원에 자신이 20만 원을 보태야 한다.

이러한 일이 60대 중반을 넘긴 전 씨에겐 점점 힘든 일로 다가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일을 계속해 나갈 요량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칠성초등학교 측은 전씨의 선행을 학부모들에게 알리고 학부모 총회 때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 학교 배재선 교감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파악해 아이들이 모르도록 돕고 있다”며 “이분의 선행을 알리기 위해 도덕 교육시간에 소개하는 등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씨는 17년 전 동생을 잃었는데, 1억 5천만 원의 빚과 3살 난 조카를 남겼다. 동생이 진 빚은 전 씨가 모두 갚아줬다. 전 씨는 조카도 자신이 할 수만 있으면 돌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일을 했노라고 말했다. 전 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조카를 위해 입학 등록금 중 일부를 대 줬다. 넉넉한 살림은 아닌 까닭에 아내에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질렀지만, 그 깊은 뜻을 아내도 알아주리라 믿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전 씨는 몇 년 전 후두암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섰지만 불굴의 의지로 암도 극복해 냈다. 회색 제복의 학교 지킴이 전정환 씨의 모습이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