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
기억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
  • 광양뉴스
  • 승인 2011.11.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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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진-순천 성가롤로병원 정신과 과장


인간의 기억에 대해 첫 번째로 고려할 점은 기억은 선택적이란 점입니다. 사실 우리가 겪은 어떤 상황을 기억한다고 할 때 그 때 일어난 상황을 모두 다 100%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일부만 기억에 저장되고 나머지 중요하지 않는 부분은 뇌에서 수정되거나 삭제됩니다. 

둘째, 기억은 감정이 동반되면 그 기억은 강화되어 오래 지속됩니다. 만약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가족들과 너무나 행복한 경험을 했다거나, 이국적인 곳에서 생소한 경험을 했다면 그 기억은 다른 기억보다 오래갑니다.

또, 어떤 환자분은 어린 시절 한번 아주 강렬한 감정이 동반된 꿈이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른 기억보다도 더 잘 떠오른다고 합니다. 

셋째, 한번 형성된 기억은 판에 박듯이 그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되고 편집됩니다. 끔찍한 경험을 했던 사람의 기억도 사실 실제 사건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당시에 그 때 있었던 사람들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고, 자신이 겪은 일을 마치 다른 사람이 겪은 일처럼 감정이 배제된 채 무덤덤하게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넷째, 우리의 감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모두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후각과 미각은 특히 기억 회상에 영향을 많이 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해부학적으로도 후각과 미각을 담당하는  뇌부위가 기억을 담당하는 뇌부위(해마)와 상당히 가까이 근접해 있다는 겁니다.
상당히 병증이 진행된 일부 치매 환자분도 고구만 냄새를 맡고 수 년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섯째, 몸으로 기억된 기억은 다른 기억보다 더 오래갑니다. 기억을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하는데, 청각기억, 시각기억, 운동기억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인간은 어느 한 가지 기억을 다른 기억보다 더 잘 저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시각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이 학습이 빠르고 기억에 더 자신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의 기억은 약합니다.

청각적 기억이 강한 사람은 복잡한 것을 잘 구별하지만 기억의 정확성은 약한 편입니다.
운동기억을 잘 하는 사람은 학습효과는 떨어지지만 가장 오래 기억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실 운동기억은 소뇌에 저장되는데, 대뇌피질이나 해마보다 퇴화 손상에 더 오래 견디는 편입니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과 형태가 있는데, 크게 보면 4가지 형태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모든 치매의 약 절반(5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대표적인 질환이며, 그 외에는 뇌졸중이 20%, 우울증이 20%, 생활양식의 문제(영양, 알코올 등)나 기타질환이 약 10-20%정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질환인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갑자기 시작되는 병이 아닙니다. 병의 진행도 느리지만, 병이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대개는 명백한 치매가 시작되기 전에 약 7-10년정도는 경미한 인지적 감퇴가 진행됩니다. 이때에는 대부분 기억력 감퇴보다는 도리어 복잡한 생각이나 인지적 과정의 수행을 어려워하고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병의 진행이 느리다보니 수년 전부터 많은 치매를 연구하는 의사들이 ‘치매의 전단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치매의 전단계에 대하여 ‘경도인지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 질환이 정상 뇌 노화와는 확연히 구분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기능이 정상군보다 더욱 감퇴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위 집단군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에서 기억력 손상이 있는 ‘경도인지장애군’과 정상 노인군을 비교했더니 정상 노인군이 매년 약 1-2%가 치매로 진행하는 반면, ‘경도인지장애’군에서는 특히 기억력 손상이 있는 집단에서 매년 약 10-15%가 치매로 이행되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제는 기존의 수동적인 치매의 치료 보다 ‘경도인지장애’군을 초기에 선별하여 집중관리를 함으로써 치매로 진행을 막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