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억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억
  • 광양뉴스
  • 승인 2011.11.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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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진 순천 김량진 정신과 원장

인간은 살다보면 필요한 일들을 기억하고, 불필요한 일들은 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을 때가 있고, 더러는 망각해야 할 일이 많을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기억작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일수록 뇌와 정신적 건강을 잘 유지해 나갈 겁니다.

현대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과거 현생 인류의 스트레스와는 많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재해, 맹수들이 주 스트레스였지만, 현대에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그 안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스트레스의 양과 질도 과거와 다르게 다양해지고 급격한 스트레스보다는 만성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스트레스에 약한 정신과 신체의 부분 중에서 특히 뇌안에 있는 기억 구조물들이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즉,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으면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뇌의 구조물 중에서도 인간의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해마’라는 부위는 스트레스에 의해 잘 손상이 됩니다.

많은 연구들이 동물연구를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연구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입니다. 스트레스에 계속 노출이 되면 신체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이에 대한 저항력을 높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장기간 지속이 되면 도리어 몸이 탈진이 되어가고, 신체의 저항력을 높이려고 분비시켰던 스트레스호르몬은 반대로 신체에 독이 되어 질병을 야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오랫동안 분비되면, 뇌에도 손상을 주는데, 특히 '해마'에 있는 신경조직들이 가장 취약해서 손상이 잘 됩니다. 또한, 기존에 뇌의 기능이 좋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이러한 손상을 쉽게 받습니다.

예를 들어, 노화가 되면 뇌의 혈류나 뇌의 기능이 좋지 않는데, 이런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해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가 쉽게 손상을 입으며, 포도당(당분)을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 떨어집니다. 뇌는 에너지원을 산소와 포도당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에너지원 이용에 문제가 생기면 뇌세포 손상이 쉽게 발생합니다. 

실제 임상진료에서도 이러한 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가족의 상을 겪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자녀가 사망한 경우에 그 충격이 매우 큽니다. 충분한 준비도 없이 갑자기 상을 당하는 경우, 그 슬픔과 애통함이 보통 사람보다 길고, 그 슬픔으로부터 회복되더라도 기억력 저하가 눈에 띄게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심한 경우에는 임상적인 우울증의 증상들이 보이는데, 우울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기억손상이 더욱 커집니다.

우울증 때의 신체적 변화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노출 때 보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기억세포에 손상을 주는 기전과 거의 비슷합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도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신체적 소진과  정신기능의 쇄약을 야기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울증이 발생하는 걸로 봅니다. 또한, 충분히 치료와 회복을 겪지 않는 경우, 일정 기간 시간이 지나 우울증이 다시 재발하는 것도 이러한 정신기능의 완전한 회복이 되지 않아 병증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인성 우울증은 스트레스 없이도 잘 발병을 하는데, 이는 대뇌의 노화와 연관되어 뇌신경전달물질의 변화, 신체적 변화나 질병으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노인성 우울증은 젊은 사람의 우울증과는 다른데, 그 이유는 기억손상이 동반되어 처음 진단시 ‘치매’로 오인될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치매’를 ‘우울증’으로 잘못 오인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치매’와 ‘우울증’이 같이 동반된 경우에는 더욱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노인성 우울증의 특성 때문에 과거에는 치매와 매우 비슷하다고 해서 ‘가성 치매’라는 병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치매’보다는 ‘우울증’의 기억손상은 더 회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를 빨리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심지어는 ‘치매’와 ‘우울증’이 동반된 경우에 우울증 치료가 잘 되면, 치매의 증상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장기간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손상을 일으키는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기억장애로 이행되기 전에 이에 대해 조기에 적절한 개입과 치료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