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안아드려요 (free hugs)
그냥 안아드려요 (free hugs)
  • 광양넷
  • 승인 2006.10.26 09:37
  • 호수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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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렬 마하나임커뮤니티교회 목사
벌써 따뜻함이 더 좋은 계절이 되었다. 따뜻한 차 한 잔, 뜨끈한 국물, 가을햇살이 친근해 지고, 무엇보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면 따뜻한 사람이 더욱 그리운 법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영상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2년 반 전 호주 시드니에서 ‘후안 만’이라는 청년이 ‘안아드려요(Free hugs)’라는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과 포옹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누구나 처음엔 후안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포옹하며 마음을 훈훈케 하는 영상물이다. 

이것을 운동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색하지만 밴드를 하는 후안의 친구인 사이먼 무어가 자신의 음악과 함께 약 4분짜리의 ‘포옹’ 동영상을 공유사이트에 올리자 순식간에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었고, 감동을 받은 누리꾼들이 각각 자신들의 나라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실천하고 난 후에 그 영상을 올리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한 청년이 이를 시도했다. 낯선 사람과의 포옹이 어색하지 않은 서양문화와는 달리 모르는 사람과의 스킨십이 드문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청년이 올린 영상을 보니 역시나 처음엔 사람들이 선뜻 접근하지 못하고 신기한 듯 쳐다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몇몇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는 것을 보았다. 후안의 영상만큼은 아니었지만 포옹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는 잠시나마 따뜻함을 교감하는 행복함이 묻어 있었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면 딸들이 달려와 품에 안긴다. 그러면 키 높이로 앉아서 두 녀석을 안고 번쩍 들어 올려 볼을 부벼 준다. 하루 내내 보고 싶어 했을 아이들을 향해 해 줄 수 있는 진솔한 사랑이다. 그렇게 한 가족끼리 안아주는 일은 쉽지만 가족 이외의 사람을 안아 준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람들이 이런 영상과 운동에 감동하는 이유는 뭘까? 체험자들의 인터뷰 내용은 알지 못한 감동과 훈훈함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 삭막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 민족 간 ‘전쟁’이라는 크나큰 이슈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자리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생존전쟁에서도 사람들은 메마른 정서 속에 정과 사랑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아픔을 교감하는 따뜻한 포옹과 미소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크나 큰 위로가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누군가를 품에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넉넉한 마음과 사랑이 커다란 호수 같아야 할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과 체온만으로도 지친 영혼을 충분히 위로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우리 주위에 안아 주어야 할 사람이 너무도 많다. 당장에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수험생 자녀들, 지난 일 년을 수많은 경쟁 속에서 피가 마르도록 공부했을 우리 아이들을 꼬옥 안아주고 싶다.

매일 쉼 없이 오르내리는 물가 속에서 가계를 이끌어가는 아내와 가장으로서의 책임에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오는 많은 스트레스로 가슴이 뻥 뚫려 버린 남편들도 그렇다. 제자들의 몸부림을 바라보며 사제 간의 정이 서먹해진 세태 속에서 그저 바라만 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을 선생님도,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때로 지쳐버린 젊은이들도, 떠나버린 자식들과 어느새 한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또 그렇게 한 살 나이 들어가는 것을 서글퍼 하는 노인들도, 정쟁 속에서 때론 양심도 없어 보이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정치인들도...

무엇보다도 할 수만 있다면 북녘 땅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더욱 그리 하고 싶다.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지금 그들에게 온기가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수년 동안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근근히 연명해 온 그들이 이젠 벼랑 끝으로 내어 몰린 상황 속에서 아무도 잡아 주지 않는 그들의 손을 잡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여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