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일깨움을 살려낸 서사 희극
연민과 일깨움을 살려낸 서사 희극
  • 광양신문
  • 승인 2006.10.09 10:38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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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길 수 / 연극평론가,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광양 백운무대의 ??아카시아 흰꽃은 바람에 날리고??를 보고연극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또한 감동을 주어야 한다. 광양 백운무대의 <아카시아 흰꽃은 바람에 날리고>(이근삼 작, 김종화 연출, 나주문예회관, 05년 4월 24일)는 매 장면마다 희극적 재미와 일깨움의 맛이 배어있다. 가난한 노 퇴역 배우, 감출 수밖에 없는 인간적 약점, 부끄러움과 초라함,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멋진 희극성이 우러나온다. 진지한 고백의 순간마다 연민극의 아름다움 마저 우러나온다. 퇴역 배우의 소외, 이를 부추기는 비틀린 사회 음영이 이 공연의 성찰의 대상이다. 아울러 인간으로서 속물 근성, 속보이기 그림은 관객과의 공모 정서를 촉발시켜 폭소를 야기시킨다. 무대좌측 전면에서 이루어진 현장 피아노 연주(심영혜 연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수많은 정감 영역이 변주된다. 각 장면의 주제를 상기시킬 청각적 메시지, 연극 만들어 가는 과정, 관객은 거리를 두고 극중 장면의 문제를 조망, 성찰한다. 임정찬은 극중 문제 사연을 중심으로 정서적 반응 자세와 객관적 해설 태도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극을 안정감 있게 이끌어간다. 반원형 격자 무대 양식, 이곳에 죽은 자, 피안의 형상들, 내면 속의 인물들이 설계된다. 효과적인 원근 구도, 핀조명 지원을 통해 현실과 극중 회상이 자연스레 교차한다. 어느 날 청년 연극인으로부터 서일은 주례 요청을 받는다. 누군가가 예술가의 참 모습을 알아준다는 그 흐뭇함도 잠시 주례 취소 상황이 일방적으로 통보된다. 황당함, 초라함, 이를 이웃 여인에게 감추려는 연극적 몸부림, 하루 내내 배곯아가며 종점까지 버스 승차를 반복해야 하는 말못할 애환과 소외, 서일(임정찬 분)의 이런 고백에 감상층은 진한 페이소스를 경험한다.김밥 포장마차 여인 시장댁(권선주 분)을 향한 사모의 정이 커가지만 그녀 역시 동네 금은방 홀애비(조석주 분)와의 결혼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 주례, 이를 떠맡아야 하는 비애, 돈 봉투 답례, 사랑을 돈 봉투와 맞바꾸었다는 비참함, 객관적인 해설 과정에서 익살의 희극성과 연민의 정서가 동시에 유발된다. 아들(박용훈 분)의 결혼 주례 역시 사이비 예술가 이동선(조석주 분)이 맡아 할 줄이야. 이를 막지 못한 가난한 아비로서의 무기력, 비참함, 씁쓸함의 정서가 우러나온다. 출연료 환상, 대작 연극 만들기를 향한 허풍, 친구 대광 역의 김종화, 과장, 희화를 향한 그의 몸말 설계는 서일(임정찬)의 어두운 이미지와 멋진 대조를 이루며 희극적 릴리프 기능을 수행한다. 신파 연기를 향한 과장 연희, 어리석음 이미지의 반복 전략, 이는 우월적 희극 정서를 효과적으로 유발시킨다.예술상 수상 거부라는 조작 기사, 화려한 가짜 영웅에 반응, 얼마 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 주인공 서일은 극단의 공허, 절망을 주체 못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어간다. 진심으로 애통하는 자, 하얀 상복의 시장댁이 아닌가. 진정한 이웃은 누구일까. 처연한 바라봄, 인생 관조의 시각이 클로즈업 된다. 자신의 죽음과 이웃들의 반응을 공연 해설자, 인생 관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작법이 신선하다. 서사극만의 재미와 품격이 막판 살아난다. 시적 분위기로 이어질 독백성 침잠의 음성 설계, 이를 향한 숨은 의미 발견 및 탐색이 보완된다면 공연의 입체성, 종합성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입력 : 2005년 0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