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벗기는 강아지 ‘똘똘이’
양말 벗기는 강아지 ‘똘똘이’
  • 광양넷
  • 승인 2006.10.10 10:59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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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옥 경 / 한국문인협회 회원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똘똘이'다. 녀석과 만난 지 만 3년이 되었으니 강아지라는 표현이 맞지 않지만 식구들은 아직도 "아이고, 예쁜 우리 강아지"라고 한다. 데려올 때 '대박'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강아지에게 "대박아"하고 부를 때마다 발음이 어딘가 똑 부러지지 않고 두루뭉술해 강아지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대박'이라는 이름도 좋았지만, 발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똘똘이'로 이름을 바꾸었다.'똘똘이'는 검정색 푸들 '땡이'(엄마)와 흰색 말티즈 '만두'(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견이다. 부모의 유전인자를 충실히 받아 몸 점체가 흰색이고 말티즈 같은 직모와 푸들을 닮은 반곱슬털을 뽐낸다. 흰털 사이사이에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연한 갈색 털이 있다. 눈에 있는 아이라인은 말티즈의 특성 그대로다.정말 신기한 것은 꼬리인데, 길지 않은 꼬리가 얼마나 또르르 말려 있는지 꼬리를 흔들면 쪽진 하얀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는 것 같아 웃음을 자아낸다. 예전에, 아는 집에서 강아지가 있으니 가져가라고 했지만 우린 당시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개를 좋아하는 아들 녀석이 어느 날 젖도 안 뗀 강아지를 자전거에 싣고 와 버렸다. 조막만한 강아지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 강아지에게 우유를 먹이고 배변 훈련을 시키며 고생했다. '똘똘이'가 우리 집에 온 사연이다.아들 녀석은 학교 갔다 오면 강아지를 안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하루는 똘똘이가 그 품에 가만히 있지 않고 심하게 요동치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오른쪽 앞 다리를 절룩거리기에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뼈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약도 하루에 세 번씩 먹이라고 해서 약숟가락에 약을 타서 입을 손으로 벌리고 먹였다. 처음에는 맛있는 것인 줄 알고 꿀꺽 먹던 '똘똘이'는 두 번째부터는 약 숟가락만 보면 제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 일을 기억하는지 이 녀석은 지금도 약 숟가락을 보면 얼른 다른 방으로 도망간다. 개는 어떤 일을 하고도 잘 잊어버린다는데, 실상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또 한 번은 이유 없이 갑자기 벌벌 몸을 떨면서 어두운 구석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먹던 통닭 뼈를 뒤편 베란다에 두었는데 어느 틈에 '똘똘이'가 그것을 먹은 흔적이 있어서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닭뼈는 개에게 치명적이며 특히 애완견은 장이 약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똘똘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뒤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건이 떨어져서 충격을 받았거나 안 좋은 옛 추억이 떠올라 그런 것이니 안정시키면 된다고 했단다. 물건 떨어진 것은 없으니 안 좋은 옛 추억이 떠올랐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추억인지 궁금했다. "똘똘아, 무슨 안 좋은 추억 있어?" 물어봤자 동그란 눈만 더 귀엽게 뜨며 꼬리를 쳐대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우리 식구들이 저녁에 퇴근하면 '똘똘이'는 언젠가부터 높이뛰기 선수처럼 펄쩍 뛴 다음에 달려들어 양말을 벗기기 시작했다.가르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녀석은 제 이빨에 걸려 식구들 발에 상처가 날까봐 발끝에서 조심히 양말을 잡아당긴다. 그래도 안 벗겨지면 양말목을 늘어져라 잡아당긴다. 양말이 훌러덩 뒤집어 벗겨지면, '똘똘이'는 입에 문 양말을 좌우로 흔들어댄다.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와 똑같다고 한 마디씩 했다. 식구들이 맨발로 다니는 여름에 '똘똘이'는 식구들의 옷을 물어다가 코를 박고 흔들어댄다. 이런 식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시간이 갈수록 더 길어지는 까닭이 혼자 집을 봐야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밥그릇이 아니면 절대로 안 먹고 자기 물그릇이 아니면 물을 떠 놓아도 절대로 안 먹는다.빈 밥그릇이나 빈 물그릇은 반드시 물고 와서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는다. 빨리 채워 달라는 뜻이다.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서랍을 열면 제 귀 소독하려고 면봉을 꺼내는 줄 알고 도망간다. 못 먹는 것이 없어 별명이 '먹돌이'다. 그러나 "먹돌아"하고 부르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얼음은 살살 핥아먹고 누룽지는 맛나게 씹어 먹는다. 단감, 사과, 수박도 잘 먹는다. 토종 촌놈처럼 감자, 고구마, 떡을 매우 좋아한다. 주변에 턱을 받칠만한 물건이 있으면 꼭 턱을 받치고 네 다리를 좍 벌리고 엎드려 잔다. 화장지, 책, 베개, 문턱, 심지어는 식구들 다리까지 안 가리고 턱을 괸다. 잠이 푹 들면 몸을 젖혀 사람처럼 등을 바닥에 대고 배는 하늘을 향하는 '벌러덩' 자세로 잔다.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면 방문 앞에서 낑낑대며 아이들을 깨운다. 내가 일찍 나가거나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면 내게서 안 떨어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출근 시간에 맞춰 나갈 때는 쳐다보지도 않고 제 할 일만 한다. 참 신기하다.변도 잘 가리고 성격도 좋고 귀여운 짓을 해서 예쁘기도 하지만 아파트에서 낯선 사람 발자국 소리만 나도 짖기 때문에 이웃에게 미안하다. '똘똘이'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스피커로 이야기하면 베란다까지 쫓아나가서 짖어댔다. 똘똘이 때문에라도 빨리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물론 개 짖는 소리가 우리 집뿐 아니라 아파트의 다른 동에서도 수시로 나긴 한다. 그렇지만 이웃들이 모두 우리 상황을 이해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에서는 개를 키우는 게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다고 남에게 줘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짖지 못하게 단속을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고, 주택으로 이사할 때까지 마음 졸이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많이 참아준 이웃들에게 고맙고 죄송하다.주택으로 이사 온 후엔 똘똘이가 짖어도 그리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 집이 외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훨씬 마음이 편하다.뛰노는 게 즐거운지 똘똘이는 틈만 나면 마당에서 힘껏 뛰어다닌다. 목욕을 더 자주 시켜야해 번거롭지만, 그 대신 따로 산책을 시킬 필요성은 줄어들었다. 똘똘이는 여러 가지로 날 위로해준다. 남편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증이 왔을 때도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혼자 자게 되었을 때는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었다. 똘똘이가 없다면 별로 웃을 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제 할 일 하느라 바빠 밤늦은 시간에나 얼굴 볼 수 있을 뿐이고 남편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똘똘이와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내게 똘똘이가 좋은 친구라는 것은 당연하다. 개를 이용한 치료법이 있다고 하는데, 굳이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더라도 개가 사람과 감정이 가장 잘 통하는 동물이라는 걸 난 의심하지 않는다. '똘똘이'가 요즘은 가끔 이불에다 실례를 한다. 덕분에 나는 이불을 눈부시도록 빨아댄다.장가보낼 때가 넘어서 그런지 일종의 시위를 하는 것 같다. 암컷을 하나 더 키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똘똘이도 제 짝과 행복하게 살아야 할 테니까. 똘똘이의 2세는 어떤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날지 궁금하다. 똘똘이를 키우면서, 생명은 함부로 쉽게 맡아 기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임감과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버려진 개들이 종종 눈에 띄지만, 다 데려다 기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똘똘이가 식구들에게 지금처럼 웃음을 주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길 바란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입력 : 2006년 0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