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감성의 힘
긍정의 힘, 감성의 힘
  • 김현주
  • 승인 2007.03.29 10:44
  • 호수 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흥 남 한려대 교양학부 교수
대학시절 필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린 적이 있다.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40대 중반의 사회인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감성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며 논리를 선호했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감이 의식의 한 켠을 지배했던 것 같다. 사회를 변혁하고픈 열망도 분노감의 다른 한 쪽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른바 386세대들은 대체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과 분노감 그리고 변혁열망 등이 응축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작금에 이르러 이들은 욕(?)도 많이 먹고 있다. 편 가르기 좋아하고 의욕만 너무 앞선다는 비판에서부터 아마추어리즘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항간에는 우리 사회를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간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잘못한 점도 있지만 잘한 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는 잘못한 점들을 더 들춰내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한 세대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세상도 아니다. 현 정권의 탄생과도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으면서 정책의 브레인 역할을 맡을 만큼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부상했지만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한 질책의 성격이 더 크다고 본다. 386세대들은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했던 당시의 열정을 쉽게 잊어버리면 안 된다. 소중한 자산으로 되새겨 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세월이 좀 더 흐른 뒤에 그 열정과 에너지들이 우리 사회를 변혁하고 발전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 평가해도 늦지 않다. 
 
대학시절의 경험을 또 하나를 떠올려 본다. 국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당시 청록파의 시들을 매몰차게 비판한 경험도 갖고 있다. 대다수 민중들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자연의 서정을 주로 노래한 그들의 작품성향이 못마땅했고 현실도피로 여겨졌다. 그러한 시를 창작한 작가들도 당연히 비겁한 지식인으로 비쳐졌다.

새삼스럽게 대학시절을 떠 올려 본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열정은 가득했을지언정 긍정의 힘이 약했던 점을 반추하기 위해서다.

또 하나는 자연의 서정을 읊은 시라면 면밀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현실도피적인 성향을 띠었다고 비판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 있는 만큼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통찰하면서 사물을 종합적으로 관조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셈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문학은 모두 현실도피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세월이 더 흐른 뒤에 깨달을 수 있었다.

자연을 대상으로 했을지라도 일제하의 암담한 현실을 문학적 장치를 동원하여 우회적으로 비판한 경우가 있었음을 소홀히 한 결과다. 비판만 무성했지 긍정의 힘이 약했던 것이다. 연륜이 짧고 혈기 왕성한 대학시절이었던 만큼 그러한 생각 자체를 탓할 수는 없을지라도 긍정의 힘이 약했기에 사고의 균형감각을 회복하는데 걸린 시간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또 은연중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남녘의 산하는 꽃으로 가득하다. 자연의 순리를 좇다보면 인간의 욕망이 덧없음을 실감할 때가 많다.

선인들이 자연을 벗하고 또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삶의 오묘함을 설파한 대목과 접하다 보면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들은 자연을 단순히 자연으로 대하지 않았다. 여러 형태의 예술도 인간에게 감성을 키워주지만 자연은 감성을 북돋아주는 보고(寶庫)다. 어쩌면 자연은 인간에게 감성을 높여주는 원천이다. 또한 감성의 힘은 순리를 따르는 지혜와 강인함도 준다. 긍정의 힘도 감성의 다른 한 축이다. 

과거와 비해 사람들에게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못하는 게 없어야 생존경쟁에서 밀려나지 않는 세태다. 작금에 이르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경쟁력이다.

그만큼 삭막해 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둘러 싸여 있다. 경쟁력을 쌓기 위해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감성과 긍정의 힘이다. 감성은 인간답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고의 저장소다. 긍정은 두루뭉수리하게 대충 넘어가는 무비판적 사고가 아니다.

긍정의 힘, 감성의 힘은 개인의 재발견과 성찰에 이르는 동인(動因)이 될 수 있거니와 좀 더 품격 있고 뿌리가 튼튼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소중한 정신적 가치다.

남녘의 산하와 완연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상춘지절(賞春之節)에 느끼는 단상(斷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