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대 내·외용을 구분하자
호칭, 대 내·외용을 구분하자
  • 귀여운짱구
  • 승인 2007.10.31 19:19
  • 호수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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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공공기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성 사무원이 “저희 과장님께서 어쩌고저쩌고…”라 말한다. 난 그가 제네 과장을 호칭하면서 경칭을 붙여 말하는 것이 마땅찮아서 “가만  있어요, 아가씨,”하고 전화를 가로채서, “그 과장님은 누구네 과장님입니까?”하고 물었다. 저쪽 사람은 내 말뜻을 못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은 게 당연하지. 내 질문이 뚱딴지같았으니까), “예, 예, 뭐라고요?”하며 되묻는다. “그래 무슨 말씀을 나에게 하려는 겁니까?”라고 내가 묻자, 이번에도 “우리 과장님과 계장님께서 이리저리 말씀하셔서…”라고 사뭇 점잖은 말씨로 말을 한다.

이 때 난 이 여성에게 좀 가르쳐줘야 하겠다는 객기가 도져서, “ 여보세요, 아가씨. 내 말을 좀 들으세요. 당신이 지금 자꾸 과장님이니 계장님이니 하는 그 과장과 계장은 당신네 사무실의 과장이고 계장이지 이 전화를 하고 있는 이 사람, 곧 나의 계장님이거나 과장님은 아니잖소. 그러니 말하자면 당신 집안사람격인 과장과 계장을 가지고 당신의 손님인 나에게 그렇게  ‘-님’자를 붙여서 높여 말할 것까진 없지 않느냐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라고 정중히 말해주었다. 그러나 속된 말로 코드가 안 맞는 건지,  여사무원은 영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허긴 습성이 난방이라, 수백 번, 아니 수만 번 써먹어 입술에 꽉 달라붙은  ‘-님’자를 쉽사리 떼어버리기가 쉽지는 않겠거니 일단 단념하고서,  이렇게 타이르고 전화를 끊었다. “난 당신이 전화를 걸어와서 알다시피 강 아무개라는 사람이요. 당신네 과장님과 계장님에게 가서 손님에게 전화로 말할 때에는 과장이나 계장이라는 호칭에 ‘-님’은 빼라 하더라고,”

우리말의 호칭은 꽤나 까다롭다. 그것을 일일이 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여기서는 앞에서 본 것처럼 내 집안 또는 내 쪽의 사람을 상대방에게 말할 경우 경칭을 붙여야 하느냐라는 것만 생각해 보자.  우선 ‘-님’이란 말의 뜻을 금성출판사 간행 그랜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 (남의 이름이나 어떠한 명사 아래에 붙여)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예어로 부모님 / 선생님 / 부장님 / 따님 / 주시경님 등이 올라 있다.

이 존칭어 ‘-님’은 오늘 널리 쓰이고 있다. 나라 안에서 가장 높은 (?) 자리인 대통령을 부를 때에도 전에는 ‘각하’라는 존칭어를 붙여 불렀으나, 오늘은 대통령님으로 부른다. 그게 최고의 존칭인 것이다. 영어로 치자면 Mr. 또는 Mrs.에 해당한다. 미국의 대통령을 존칭해서 Mr. President(남성인 경우)라 하는 예이다. 이것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그렇게 부르자고 제안해서 정해진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대 대통령부터 군사정권시대까지는 대통령 각하라 했고, 심지어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심지어는 장관, 장성까지도 각하로 떠받들었다. 흘러간 날의 향수가 그리웠던지 제법 이름이 알려진 한 코미디언이 모 당 대통령 후보에게 ‘OOO각하’라 불렀다 해서 역시 코미디언은 코미디언이구나 하고 감탄(?)한 적도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하나 아직은 종래의 수직사회의 찌꺼기가 말끔히 씻겨지지 않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비민주적 관행이 남아 잇다. 머리에 말한 것과 같이 이름이나 관직명에 존칭을 붙이는 것이 잘못 통용되고 있어서 매우 어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다른 경우인데, 기독교인들이 자기네 교회 안에서 쓰이는 호칭을 교회 밖의 비기독교인인 일반인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대로 쓰는 것도 귀에 거슬린다. 이를테면, ‘우리 교회 목사님’ 이라거나 ‘우리 교회 장로님‘, 또는 ’집사님‘이라고 말하는 따위도 듣는 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방통행적인 어법이다. 내친걸음에 한 마디 더 하자면 가끔 어떤 가게에   일요일에는 영업을 안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안내문에 ’<주일>은 쉽니다‘ 라고 쓰인 것을 보게 된다. 이것도 좀 매우 어색하다. 필시 그 가게의 주인은 기독교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네 믿음의 식구 안에서 곧 ’집안끼리“ 쓰는 ‘주일’을 일반 통요어인 ‘일요일’대신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게의 고객은 반드시 자기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불특정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일요일>은 쉽니다‘ 하면 될 것을 굳이  자기네만의 전문용어(?)인 말로 편을 가르려 하는 것은 아닐 터인데, 혹은 자기네 종교 전도의 묘방으로 그러는 것인지, 아무튼 입맛이 떨떠름하다.
우리말은 유독 호칭 곧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 까다롭다. 상대방을 부르는 말 ‘당신’을 예로 들면, 신분이 자기와 동등하거나 조금은 낮은 사람이어서 ‘하오’할 자리에 상대방을 일컫는 2인칭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요?’ 따위로 쓰인다. 만일 자기보다 연장이거나 지위가 높은 분에게 “당신이 어쩌고...” 했다간 그 사람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다.  그런 경우엔 ‘당신’이 아니라 ‘어르신’이라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부부 간에 쓰일 때에는 퍽 다정스런 표현으로 둔갑한다.

 영어에서 'Darling!'이니 'Honey!'라고 하는 말과 맞먹는다고 할까.  때로 이 ‘당신’이 3인칭으로 쓰인다.  그 경우는 그 뜻이 ‘그 자신’이라는 것으로 화제로 삼고 있는 그 사람을 아주 높여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께서는 팔십 고령인데도 모든 일을  ‘당신’의 손으로 하신다>와 같다.
좌우간 우리말의 호칭은 조심해 써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부르는 경우와 밖으로 내세워서 부르는 경우를 구분도 해야 한다. 이것은 말 자체에 해당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예의범절에 관한 하나의 사회적 상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