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과 선택
좋은 만남과 선택
  • 모르쇠
  • 승인 2008.01.3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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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수 광양여고 교장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귓전에 들려오는 아내의 푸념 섞인 이야기로 바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상을 무엇으로 차릴까?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을까? 식구들을 위해서 무엇을 사야 할까? 등등 수많은 선택과 만남을 하기 위해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학생들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많은 만남을 통해 선택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어떤 학원을 다녀야 할까? 어떤 공부를 먼저 해야 하나? 중학교 다닐 때는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 할 것인가? 친구는 어떤 친구를 사귈까?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또는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또 포기하며 매일 매일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정치인, 경제인, 사회인, 사업인 등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또 공부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의 지혜를 활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마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잘못된 만남과 선택이 커다란 상처와 절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면 몇몇 잘된 만남의 선택과 잘못된 만남을 예로 들어보자.

베드로는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감화를 받아 좋은 선택을 하여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가 되었다. 또한 인도의 국부(國父)인 마하트마 간디는 반영(反英)을 위해 불복종 비협력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바탕으로 시티아그라하(진리 파악) 브라흐마차랴(자기 정화) 아힌사(무상해)의 3가지를 내세웠다. 나아가 이것에 스와라지(자치)를 결부시켜 비폭력 비협력의 독립운동의 길을 선택하고 인도사람들이 이 선택에 동참하게 하여 인도가 독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반면, 톨스토이가 1877년에 발표한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서 카레닌의 아내 안나 카레니나는 미남 청년 장교 우론스키 백작과 잘못된 만남을 통해 남편과 자식을 버리게 된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따돌림을 받아 애인과 함께 외국으로 떠나버리는데 이윽고 우론스키의 애정이 식어가는 것을 깨닫고 질투와 광기를 누르지 못하고 철도에서 자살을 꾀하고 만다. 또한 부활(1898~1899)의 주인공 귀족 네플류도프는 자기 하녀인 카튜사를 유혹하여 임신시킨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은 삶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고 후회스런 삶을 살다가 간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잘못된 만남과 선택으로 인하여 불행을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우리는 주위에서 남보다 앞서간 사람들은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이 잠잘 때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연구하며, 항상 창의력을 개발하며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남보다 한발 앞서고 싶으면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하루의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무언가를 얻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 더불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앞날에는 밝은 미래가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떤 만남을 통해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일까? 레오 톨스토이가 말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한 만남과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런 좋은 만남의 선택들이 이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누적이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프랑스 실존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공부를 할지 잠을 잘지, 그 사람을 만날지 말지,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기도 하고 때론 자동적으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선택하건 그 선택의 결과가 자신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재론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리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만날 것이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도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