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푸대접하는 사회
노인을 푸대접하는 사회
  • 백건
  • 승인 2007.02.28 23:21
  • 호수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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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7.2%로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19년 뒤인 2019년에는 14.4%로 높아져 ‘고령사회’가 되고 다시 7년 뒤인 2026년에는 23.1%로 ‘초(超)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통계가 비교 가능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다.

과학 및 의학기술의 발달과 웰빙 분위기의 확산 등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많이 연장되고 있는 반면 출산율이 저조한 점은 고령화 사회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자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국가는 물론 사회의 각 부문에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또 이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추세다. 일리 있는 지적이고 이와 관련된 대안이 시급히 요구된다는 점에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젊고 의욕에 찬 젊은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패기로 가득할 때 그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밝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우리 사회가 경쟁력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노인들을 푸대접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점이다.
 
 심지어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바라보았다고 힘없는 노인을 살해하는 젊은이가 있을 정도니 더 이상 무슨 사례가 필요하랴.
 
 지극히 일부에서 저지르는 패륜아적 행위나 정신이 이상한 젊은이의 행위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징후가 심상치 않다. 노인학대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노인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다른 독특한 삶을 살아온 세대다. 일제시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온갖 고초와 수난을 겪으며 살아온 세대다.
 
개인마다 다소의 편차는 있겠지만, 나라의 위기와 혼란을 겪으면서 체득한 소중한 체험은 후세들에게 삶의 지혜로움과 교훈을 전해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과거 우리나라에 고려장이라는 풍속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러한 풍속의 유래와 기원 및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을 각 가정에서 일정한 양의 식량만 주어 한적한 곳에 유기(遺棄)하고 더 이상 돌보지 않도록 나라에서 법으로 정하고 이를 어긴 자는 엄하게 다스렸다고도 전해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침이 잦고 흉년이 잦다보면 기근으로 백성들이 고생을 많이 하게 되고 따라서 자연히 노동력을 상실하여 자생할 여력이 없게 되니 부족의 세를 약화시킬 수 있는 노인들로 인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하지만 오늘날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고려장의 풍습과 그 형태만 다르지 이와 유사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다 보면 일과성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노인을 푸대접하는 사회는 정녕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아니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늙지 않을 수 없으며 늙지 않는 사람도 없다. 노후의 편안한 삶은 각 개인의 능력에 달린 문제로 볼 수도 있겠으나, 최소한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푸대접받는 사회 풍토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이런 사회를 개선하고 노소가 어우러져 살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소박한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우리 사회에 여러 형태의 모임 및 동아리들에 가능하면 노소가 함께 하는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운동 및 여행 그리고 각종 답사회 등에 가능하면 노소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을 통해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참뜻을 전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젊은이는 이런 자리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시간들로 자연스럽게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실제로 노소가 함께 하는 모임은 비교적 생명력도 있고 모임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노인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갈등적 요소를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젊은이들은 왕성하게 일에 추진하는데 장기를 발휘함으로써 여러 가지 면에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 무엇보다도 노인들의 능동적인 참여 자세도 필요하지만, 젊은이들이 먼저 노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을 유도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둘째, 우리 사회가 원로를 대접하는 사회 풍토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원로’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는 점도 노인이 푸대접받게 하는 한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 ‘원로다운 원로’가 없을 뿐 아니라 원로라고 자칭하는 분들이 대체로 지극히 권위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소통하려는 마음이 부족해 완고함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존경할만한 원로가 전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권력이나 언론 및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고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선도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질타하기를 서슴지 않는 어른이 있다는 얘기다.
 
지역사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원로들의 경륜과 지혜를 지역사회에서 수용하고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셋째,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말년에 풍요롭게 살지는 못할망정 최소한의 행복추구권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노인 복지제도와 노인 수용시설의 확충 그리고 노인 여가시설 및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노인들이 체감하기는 미흡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예산의 확보가 시급한 당면문제이겠으나, 국가의 재정상 어려움이 있으면 각 지방자치단체 및 독지가들의 후원을 통해서라도 이러한 점들을 보충하고 관심을 두어야 할 때다.

이런 점에서 최근 광양시에서 여러 사회복지 기관의 확충과 더불어 노인 수용시설의 확충이나 여가시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각 가정에서 부모를 섬기고 노인을 존중하는데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일 게다. 청소년들을 비롯해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백 마디의 말보다 실천이 더 실감나고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기회를 준다.
 
사실 이 점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거니와 위에서 열거한 것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유치원은 물론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 경노의식을 키워주는데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실질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많이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 등 에서도 노인들이 등장하는 경우 이들을 은연중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점들은 없는지 각별히 신경을 써서 제작하는 것도 효과적인 교육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희망차고 밝은 선진 미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몫도 크지만 노인들의 지혜와 경륜이 조화를 이룰 때 더 빨리 앞당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단순히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 여러 가지 대안을 서두를 때 우리 사회의 미래는 훨씬 더 밝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