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품속 같은 내 고향 광양
어버이 품속 같은 내 고향 광양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3:58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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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광양시 진상면 섬거리 신시마을은 백운산 기슭의 삼정봉(三政峰), 응봉(鷹峰), 각산봉(角山峰)이 병풍처럼 둘러진 자그마한 마을이다. 이 맘 때면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든 산 아래 들녘에는 여름내 장마를 이겨내고 수확을 기다리는 오곡백과 들로 한 폭의 동양화를 본다고 해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으리라.

삼한시대의 생활흔적인 유물이 산재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면서도 아직도 5일장이 설정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일상의 고단함을 잊고 싶은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특별한 기억의 한가운데에는 산골 초동(樵童)들과 여름 내내 피래미며 은어를 잡으며 멱감고 놀던 수어천(水魚川)과 300여년간 마을의 애환을 함께 해온 느티나무가 있다. 하교길에 너, 나 없이 약속이나 한 듯 이곳에 모여 어둑어둑 해질녘까지 온 몸에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어울려 놀던 모습, 기계층 걸린 빡빡머리며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등,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는 관공서와 학교가 들어서면서 예전의 모습이 많이 퇴색되어 버렸지만 추억속의 수어천과 느티나무가 있어 잊혀져 가는 옛 기억을 그려볼 수 있다.

지금은 광양제철소의 공업용수로, 건설용 모래채취로 한국경제의 한 몫을 다 하느라 예전의 정취를 잃었지만, 그 당시엔 물이 맑아 강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온갖 물고기를 살찌우던 천혜의 강 섬진강의 풍경들이 아련하다.

내 고향 신시마을 동쪽 들판은 버들내와 죽배미, 동쪽에서 뱀이 기어가는 듯 꾸불꾸불한 배암논길, 마을 북쪽에 있는 용계마을 가맛소 주변에 있는 정자나무와 정각은 여름철 우리들의 놀이터 였다. 당시의 추억들은 내 삶의 고단함을 덜어 주는 활력소가 된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또 하나의 추억은 진상 관내 온갖 토산품과 갖가지 생활용품이 거래되던 진상 5일장터가 있다. 지금 생각에도 제법 큰 장(場)이 섰는데 인근 마을사람들이 재 넘어 산길을 따라 물건을 팔러 올 때면 장사치들의 떠드는 소리에 취해 한나절이 흘렀고, 혹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라도 볼라치면 그저 산머루와 다래에 입맛을 의지해 온 친구들과 군침을 삼키며 아쉬운 마음만 달래곤 하였다.

나는 내 고향 광양을 떠올릴 때면 내 영혼을 살찌게 해 주고 평생동안 평온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 진상교회를 빼놓을 수 없다.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부모님은 8남매를 두시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남기를 바라셨다. 매일 새벽 우리 형제들을 깨워 가정예배를 드린 후 교회에 나가서 새벽예배를 드렸고, 그 은혜에 힘입어 나도 장로가 되었다. 가훈도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7절)’였고 이는 그대로 8남매의 가훈이 되었다. 지금도 옛 모습의 조그만 진상교회가 그대로 있어 가끔 고향을 방문할때 그 곳에 가 보면 50년 세월이 흘렀어도 풍금소리, 찬송가소리, 기도하시는 부모님들이 나를 반긴다.

내 고향 광양은 언제나 마음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으며, 30여년간 흔들리지 않고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날 키워준 곳이다.

고향 광양은 늘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어버이의 품속 같이 포근하다.
 

입력 : 2004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