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산천 꿈이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고향의 산천 꿈이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00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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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식 경화건설 대표 광양읍 읍내리 출신
고향의 산천과 거리거리 골목골목, 또는 그 어느 곳없이 추억이 어리고 꿈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지만 내가 자란 광양읍 만큼 짙게 내 꿈과 추억이 뭉뜨그려 있는 곳은 없을 성 싶다.

막상 내 고향 신문인 광양신문에 내 어릴적 소회를 하려니 부끄럽기도 하고 고향 선.후배님들에게 미안한 감도 앞선다. 평소 자주찾아 뵈야 함에도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잠시 잊고 산 것은 아닌지 광양신문을 계기로 뒤돌아 봐 지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광양읍 읍내리 구 군청 옆이다. 어릴적 추억은 한 둘이 아니지만 제일 추억에 남는 것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백운산에 등산을 간 일을 잊을 수 없다. 당시엔 등산복이나 등산화 장비가 없어서 등산화 대신 형님들이 신던 워카를 대신 신고 탄띠(반도)에 수통, 대검을 차고 어깨엔 군인배낭을 메고 백운산을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모습이 고교생 군인(?)이 연상돼 생각하면 할 수록 웃음이 나온다.

이 때 친구들 10여명이 늘 함께 다녔는데, 당시 고교 친구로는 종대(전남드래곤즈 단장),형권(태인기업 이사), 홍석(국정원 근무), 동기(포목점 운영), 면수(교사), 가웅(란 농원운영),용현(건설업), 창현(컨설팅 운영)이 등이다.

당시 친구들은 백운산 정상에 올라 준비 해 온 식량을 가지고 나뭇가지를 꺾어 밥을 해 먹은 다음, 하백운사(절)로 내려와 장작불로 잘 달궈진 하백운사 절에서 하루를 묵었다. 당시엔 백운산은 등산로 등이 없어 산세가 험해 당일 코스로는 하산을 못해 꼭 이 절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다음 날 집으로 돌아 온 기억들이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우리는 고교생이면서도 겁이 없었다.

또한 추억이 새록새록 하는 화신광장을 빼 놓을 수 없다. 지금은 광양읍사무소가 된 구 군청앞 길 건너 오른쪽, 광양상설시장으로 들어가는 길 앞쪽에 있는 수향다방에서부터 군민회관 일대가 넓게 비어 있는 공터가 화신광장이다. 당시 화신광장에는 말굿이나 써커스들이 들어와 큰 천막을 치고 “친애하는 광양군민 여러분”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지금은 화신광장이 없어져 그 많은 얘깃거리가 추억에서나 떠올릴 뿐 어릴적 추억들이 하나,둘씩 사라짐에 안타까울 뿐이다. 날 키워 준 내 고향 광양읍을 꿈엔들 어찌 잊으리오.
 

입력 : 2004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