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나에게 인생의 스승
고향은 나에게 인생의 스승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08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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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갑 수 세무사 / 재동세무회계사무소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광양읍 인서리.
인서리는 광양 읍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서천과 동천이 흐르고 주위엔 서편들과 동편들 논과 밭이 있었다

그 논과 밭 사이로는 개울이 흘렀기에 당시 고향은 자연 그대로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 그 자체였다.
지금 그 때를 회상하려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당시 함께 뛰어 놀던 동네 친구들이 제일 보고 싶다.

그 때 동네 친구들은 연령에는 관계없이 이웃에 사는 또래들이 말 그대로 친구들이다.
이런 동네 친구들과 봄이면 들판 논두렁을 달리다 숨이 차면 들녘에 누워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것을 보았고 새싹이 트는 생명력을 보는 등 어릴적 추억이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서천에 위치한 광양교 밑에 위치한 도치 바구(지금의 덕례리)에서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수영을 배웠다.
이 때 수영을 하던 우리들은 솥아 있는 큰 바위에서 뛰어 내려 다이빙을 하면 용맹스러운 것으로 알고 겁없이 뛰어 내려 겨우 숨을 할딱 거리며 수면위로 부지런히 올라오면 이를 기다리고 있던 선배들이 이때라 치며 우리들의 머리를 눌러 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이 때 물을 먹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정말 그 때는 죽는 줄로만 알았다. 저녁이 되면 모깃불을 피워 놓고 와상 위에 가지런히 누워 밤 하늘의 별을 세고 있을 때, 행여 모기에게 물릴 까봐 모기와 더위를 쫓아 줄려고 부채로 우리를 부쳐주시던 어머니.그런 부모님을 잊을 수 없다.

또한 가을이면 친구들은 수박과 참외 등을 과일서리 했던 일들이나 서천 개울의 물을 막아 고기를 잡기위해 개울 물을 퍼 내던 일등 어느 것 하나 추억 아닌 것이 없다.
더욱이 광양읍의 겨울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아랑 곳하지 않고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연날리기, 스케이트 타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때 꽁꽁 언 손을 어루만져 주시던 어머니 손은 왜 그리 따뜻했는지...

또 연을 만들기 위하여 친구들이 서로 도와서 겨우 만든 연은 연 싸움으로 연을 하늘에 날려 버려 우는 친구들이 많았으며, 가끔씩 주먹 다짐을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아쉬운 추억은 당시 스케이트가 목재로 만든 삼각대 밑에 두꺼운 철사줄로 스케이트 날을 대신해 고무줄로 발을 묶어 고정한 다음 얼음판을 탔던 동천은 얼음이 깨진 지도 모르고 타다 빠져 추위에 떨면서 모닥불에 옷을 말리던 기억 사계절을 마음껏 누리고 어린시절을 보냈다.

사춘기 시절을 거치며 청년시절까지 나의 고향은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광양의 자랑인 백운산을 아침 일찍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는 버스로 옥룡의 진틀 마을에 도착해 백운산 정상에 올라서면 백운산은 우리에게 드높은 기상을 가르쳐 주었다. 억불봉과 노랭이 봉을 지나 수어리에 이르면 진상면에 도착해 1박을 한다.

다음 날, 우리는 망덕해수욕장(배알도)을 도착해 섬진강 하류의 넓은 바다를 보면서 세계를 향하는 꿈을 심었고 섬진강을 따라 진월을 거쳐 다압에 이르면 섬진교 밑으로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에서 여유로움 또한 배웠다.

광양 향교에서는 유교사상을 나의 머리 속에 깊이 심어 주었고 유당공원.옥룡사지(동백림)등 아름다운 나의 고향은 나에게 있어 언제나 삶의 교과서다.
예전만 해도 누구나 고향에 대해 물어 보면 광양이라고 답하면 잘 알지 못해 설명을 열심히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내 고향 광양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입력 : 2004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