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늘 마음의 안식을 준다
고향은 늘 마음의 안식을 준다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26
  • 호수 1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강 문 / 노동부 서울북부 산업안전과장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만 유독 난 고향자랑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요즘엔 광양제철소까지 있어 도시와 농촌이 병존하는 도농복합도시로서 전국 기초 지방자치단체중 재정자립도가 제일이고 또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이라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어깨가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나의 고향 광양시 진상면 섬거리(신시부락)는 뒤쪽으로 백운산 줄기인 삼정봉(三政峰)과 각산봉(角山峰)이 우뚝 자리하여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주고 앞쪽엔 수어천이 끊임없냇이 흘러 넓다란 들판에 가믐을 모르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그야말로 산과 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나는 유년기를 거쳐 청년이 다 되기까지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살아온 곳이기에 나의 몸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성 모두는 바로 이곳의 풍속에 바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본래의 습성들이 뚜렷이 나타나곤 한다

유년기,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천방지축으로 나불대며 초란이란 별명이 따라 붙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어머니 젓을 물고 살았던 기억하며 물논에 머리가 처박혀 죽을뻔 했던기억, 특히 남의 집 사랑채 지붕에 불낸 일이 가장 기억에 생생하다 함께 불냈던 친구가 있었으니 그 친구 지금 "재경 진상초등학교 제40회 동창모임"에서 만나고 있다 모임에 나오는 친구가 10여명이 넘는다 앞으론 여자 동창들도 동참을 시키기로 했다. 그러면 15명이 넘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고등학교가 다행히도 진상에 위치했으니 진학을 할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유학을 해가며 진학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 생각하면 풍경은 좋았으되 당시 경제생활이란게 참으로 어려웠고 가난 했었다 교모도 형이 쓰던 거에다 책가방은 누나가 쓰던 거 가지고 다녀야 했고...

그나마 외지 그러니까 진월, 옥곡, 골약 등지에서 진상중학교로 진학해 온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제법 외딴 지역(면)으로 원정도 해가며 추억거리가 한층 넓고 다양해 졌다.

그리고 초등학교때는 심하지 않던 선후배 관계가 어찌나 엄격했던지 중1때 3학년 규율부 선배들 한테 많이도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함께 얻어 터지고 지역 텃새해가며 쌈질하던 친구들이 지금 "재경 진상중학교 제17회 동창모임"에서 자주 만나고 있다 모임에 나오는 친구가 20여명 된다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cafe.daum.net/jm17)

명절 때나 부모님 기일 때 간혹 찾는 고향의 지금 모습은 옛날 우리 어렸을 때와는 사뭇 다르긴 해도 나이 좀 더 들면 꼭 다시 귀향해 살고 싶은 포근한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고향은 정녕 마음의 안식처가 분명한 것 같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고향의 정을 함께 나누며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기에 덜 외롭고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입력 : 2005년 0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