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푸근한 내고향이 최고야!”
“마음 푸근한 내고향이 최고야!”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56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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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10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이학도 옹이 타국살이 80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 옹은 현재 골약동 수동마을 영천이씨 제각에서 살고 있다.

올해 95세로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노년에 귀향한 이학도 옹은 1912년 골약동 수동마을 영천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지금의 골약초등학교 전신인 하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고향인 광양과 조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집념과 끈기로 극복하며 동포들과 힘을 모아 비철금속 판매사업을 시작해 내로라하는 중견 사업가로 성공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처음 광양을 찾았을 때 세끼 밥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고향 사람들이 있었어. 그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웠지. 이것이 계기가 돼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 옹은 1980년에 자신의 땅 1388평을 골약중학교 부지로 희사했고, 1985년 1천만원을 들여 골약동사무소 창고를 건립, 기증했다. 또한 1989년 광양시청에 3500만원 상당의 음향기기와 현충탑 건립금으로 3천만원을 기탁하는 등 이 옹의 고향 사랑은 지금도 지역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동광양시에서는 이학도 옹에게 제1회 ‘동광양시민의 상’'을 수했으며 골약동 주민들은 옹의 공덕을 기리고 후세까지 널리 알리어 본받게 하기로 뜻을 모으고 수동마을 영천이씨 제각 앞에 그의 공덕비를 세웠다.

“고향에 돌아오니 주민들이 다들 반갑게 맞아줘서 고맙지…고향 주민들이 나를 존경할 것도 없어. 그저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지 않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어. 허허” 고령으로 인해 이곳 저곳 골고루 쑤신다는 이학도 옹은 한달에 서너차례 보건소에서 방문해 건강을 돌봐주고 있다.

“고향바람을 쐬면서 조금씩 운동을 하면서 틈틈이 신문도 보고 있어. 주민들도 종종 찾아와 말벗도 돼주고…잔잔한 행복함을 느즈막히 맛보고 있지.”
 

입력 : 2006년 03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