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
위기의 민주주의
  • 광양뉴스
  • 승인 2013.09.30 09:32
  • 호수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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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전남상담소 소장
근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3공화국에서 유신시대 까지 민중들은 보고도 못본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경계(?) 하면서 암울한 시대를 보낸 적이 있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29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쟁취는 수많은 희생이 담보된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새삼 경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적어도 1980년까지는 부부간에 외국여행이 금지되었으며 때만 되면 북한군 전진배치 소리만 듣고 살아야만 했다. 1980년대 어느 대통령 후보는 원대복귀 없는 북한군의 전진배치는 이미 제주도까지 내려오고도 남았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만큼 우리 평민들은 전문가(?)들의 속임수에 속고만 살아왔다.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의원 까지도 후보시절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백성을 주인으로 모시고 받들겠다며 연신허리를 굽히지만 막상 권력을 잡고나면 언제 그랬으며 나 아니면 모든 것이 될 수 없다는 식이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4세가 짐(朕)이 곧 국가요, 왕권은 신성하기 때문에 왕(王)은 신(神)외에 어느 누구로부터 간섭받을 수 없다고 했던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민주주의고, 공화국은 절대왕국의 반대 개념으로 왕이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닌 백성, 국민모두가 주인인 나라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임기가 보장된 국가권력기관장(국정원, 경찰, 감사원, 검찰) 을 취임 6개월이 막 지난 지금 모두 갈아치웠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물론 인사도 얼마든지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신성한 국민의 주권을 쟁탈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음에도 아무도 모르쇠다.

더욱이 꼬인 정국을 풀기위해 어렵게 이뤄진 야당대표와 만남에서도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하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들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이였다. 이는 ‘짐이 곧 국가요, 왕권은 신성하기 때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때 군인으로 기자, 역사가, 정치가, 작가(노벨문학상 수상)로서 수많은 어록을 남기고 영국국민들로부터 사후에도 존경받고 있는 윈스턴처칠경은 “사람은 전쟁에서는 오직 한번 죽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죽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에서 패배와 승리, 정치에서 수없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노 정치가의 어록으로 지금 위정자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또 다른 어록으로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이다. 단 지금까지 시도됐던 다른 정치체제를 모두 제외한다면” 이라고 했던 부분은 자신의 이상과 같은 민주주의 실현이 결코 쉽지 않음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걱정이다. 집권여당의 원내총무가 대한민국 일부국민이 각종선거제도, 법치, 언론 등을 볼 때 과잉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구 출신 경찰청장이 야밤에 국정원댓글은 사실이아니라고 발표를 하고, 검찰에서 사실관계가 조금씩 밝혀지자 공무에 충실한 검찰총장의 옷을 벗기는 것을 두고 과잉 민주주의 운운은 문제의 심각성을 나 같은 소인배 보다 못 느낀 다는 것인가?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은 헌법파괴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험인 것이다. 국정원법 제9조에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그런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찬양, 비방,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벌칙조항이 있다고 한다.

법을 지켜야할 국가권력기관이 앞장서 법을 짓밟고, 국회 국정조사에서는 선서거부 증인 불채택, 새누리당의 노골적인 방해로 모르쇠로 일관된 국정조사는 결국 야당의 무능까지 더하여 실망한 시민, 종교계 고등학생까지 어렵게 일구어온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있다.

얼마 전 기고에서 80%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바라면서 핀란드의 타르야할로넨, 칠레의 미첼바첼레트, 독일의 메르켈 세분의 여성대통령의 소통의 리더십을 언급한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통령의 모습은 불통의 연속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답게 윈스턴 처칠 경은 어느 누구보다 어록도 많다. “비평은 잘못될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 비평은 사람의 몸에서 통증이 하는 기능과 같다.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의 주의를 끄는 것이다” 이 시점에 위정자들이 곱씹어 볼 내용이다. 최고 통치자가 비평을 외면하는 순간 어렵게 일구어 놓은 민주주의는 요원할 따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