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살면서
농촌에 살면서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09:53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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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탁 - 전광양교육장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그리고 냇물처럼 쉬임없이 바다로 흐르는 것일까?

정든 교직을 떠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의 세월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43년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면서 아쉽고 허전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시원하고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었다. 43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뒷산에서 뻐꾹새가 울어대는 봄날 아침에 커피잔을 들고 연못가에 앉아 금붕어의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느라면 ??이렇게 좋은 세상도 있구나??하는 편안한 마음과 함께 자유, 평화, 안식을 느낄수 있었다. 상추, 시금치, 호박, 오이, 감자, 옥수수 등 채소를 직접 심어 가꾸고 따서 먹는 재미도 새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농촌의 생활이 평화롭고 안식만이 깃든 생활은 아니다. 잡초와의 전쟁, 병충해와의 전쟁을 끊임없이 벌여야하며 물과 거름을 주고 온 힘을 다하여 정성껏 가꾸어야 한다.

우리 농촌도 그 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벼농사만 해도 심고 가꾸어 거둬들이기까지 전부 기계화 작업이 이루어진다. 옛날에는 모판을 만들어 못자리에 볍씨를 뿌리고 마을 사람들과 협동으로 모를 심고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서너차례 김을 매고 비료와 농약을 뿌려서 가꾸고 벼가 익어 타작을 할 때까지 농부들이 피땀을 흘려야 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 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월하게 농사를 짓는다.

농촌의 가정에도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갖추어 놓고 예전에 비하면 생활이 편리해졌다. 그래도 농촌의 농민들은 ??힘들어 못살겠다??고 한숨들이다. 우선 젊은이들이 전부 도회지로 나가고 없으니 양노당에서 소일해야 할 60대나 70대의 노인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기계로 한다고 해도 힘이 들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파서 환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쌀이나 과일 등 농산물은 수입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고 그나마 쌀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이제는 절망과 한숨뿐이다.

감나무, 밤나무 등의 과일도 전에는 일년에 한두번 농약을 치면 되었지만 이제는 갈수록 면역이 생겨서 감나무는 일곱번쯤 약을 쳐야하며 무, 배추, 고추 등의 채소도 농약을 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숭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까치, 비둘기, 고라니, 멧돼지들도 밤마다 내려와 애써 가꾼 농사를 해치고 있다. 산아래 밭에서는 아예 농작물을 가꿀 수 없게 되었고 마을 근처에서도 피해가 심하다. 평화의 상징이라 일컬어 온 비둘기 떼들이 콩을 심어 놓은 논밭을 향해 수십마리씩 떼지어 앉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전투기들이 적진을 폭격하는 것을 연상케 해준다. 옛날과 달리 산에는 숲이 가득차서 먹을 것도 많을 터인데 짐승들도 힘안들이고 쉽게 먹이를 찾으려고 한다.

이른 봄에 연못에다 금붕어를 열마리 사다 넣고 아침마다 먹이를 주니 근처에 사람만 가도 ??먹이를 주는가??하고 몰려들고 했다. 그런데 여름에 농장을 며칠 비운 사이에 금붕어 두리가 없어졌다. 물위에 새의 깃털이 빠져있어 ??독수리 같은 새가 그랬나???하고 생각했는데 집을 비울 때마다 한두마리씩 없어져 가을쯤엔 다섯마리만 남게 되었다. 붕어들도 겁을 먹었는지 사람이 가서 먹이를 주어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바위 밑으로 숨는 모습을 보고 ??고양이의 짓인가? 뱀의 짓인가??? 생각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고양이라면 쥐를 잡아먹어야 하고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어야 할텐데 짐승들도 이제는 쉽게쉽게 살려고 하니 복권이나 땅투기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인간을 닮아가는 것일까?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농민들은 땅한평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산을 개간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공업입국인 우리나라가 수출을 많이 해서 경제가 발전하면 10년후쯤 우리 농촌도 살기좋은 농촌이 되겠지??하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10년후 20년후 30년후가 되어도 농촌은 여전히 힘들기만 하다.

산기슭마다 휴경으로 잡초만 무성한 논밭을 보면서 그 논밭을 일구기 위해 피땀흘린 조상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 농촌이 언제쯤이면 생기가 넘치는 살기좋은 농촌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입력 : 2005년 0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