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 웃자~ 어려울수록 웃고 삽시다”
“웃자! 웃자~ 어려울수록 웃고 삽시다”
  • 이성훈
  • 승인 2013.11.11 10:50
  • 호수 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각박한 세상에 긍정의 삶 전파하는 MCㆍ웃음전도사 김두수 씨



“10~11월 연일 바쁜 달입니다. 보통 3~6월과 10~12월이 저희 MC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대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각종 동문회, 축제를 비롯해 지역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MC이자 웃음치료 전문가인 김두수 씨. 김 씨는 MC를 시작한지 이제 20년 가까이 된다. 본격적으로 MC 무대에 뛰어든 것은 10여년이다. 그는 각종 행사에서 사회를 맡으며 여기저기 이름을 알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두운 현실에 웃음을 전도하며 밝고 긍정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청년이다.

김두수 씨가 활동하는 무대는 광양뿐만 아니다. 인근 여수, 순천은 기본이며 진주, 전북지역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관중들이 행사에 지루하지 않도록 원활한 진행을 맡으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 순천 정원박람회 메인 무대에서 두 달간 행사를 진행한 것을 비롯해 9일 간 진주 유등축제 사회를 봤다”며 “축제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 다닐수록 광양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좀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두수 씨는 원래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조금씩 꿈을 키우던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탤런트 박인환의 극단에 가입, 본격적으로 연극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을 배우면서 그는 MC의 자질을 발견하게 된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 관객들이 오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김두수 씨는 관객들의 많은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바람잡이’였는데 무대에 서면 설수록 관객들이 반응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의 탁월한 MC 진행 능력은 다른 무대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김 씨는 본격적으로 MC의 세계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김 씨는 “스무살 당시 연극을 배우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며 “사람들 앞에 서보니 떨리긴 했지만 용기도 많이 나서 서서히 MC 길로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면서 김두수 씨의 행사진행 능력은 인정받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웃음치료사라는 공부까지 하면서 그의 MC 자질은 더욱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보면 부모님 생각 간절

김두수 씨는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많은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께서 수년간 치매를 앓다 고생만 하고 돌아가셨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 씨는 “올해 지난해와 올해 어버이날 사회를 맡으며 참석한 수많은 어르신들을 뵈니 어머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며 “겉으로는 웃고 있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때는 MC라는 직업 자체가 정말 싫었는데 마음을 다시 잡았다고 한다. 김 씨는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저의 부모님이라 생각하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며 “요즘에는 어딜 가더라도 어르신들 뵈면 부모님이라 생각하며 산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김 씨는 오랫동안 어머니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늘 고마워하고 있다. 수년 간 어머니를 돌보면서도 불평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간병해준 아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그는 “아내와 가족은 저의 큰 버팀목이자 기쁨”이라며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모자란다”고 고마워했다.


실수는 커다란 경험이자 공부

무대에 서다보면 재밌는 장면도 많고 실수도 더러 있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에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더욱더 큰 용기를 낼 수 있다. 김두수 씨는 “이번 진주유등축제에서 조명을 모두 끈 상태에서 관객들에게 휴대폰 조명을 켜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관객들이 잘 따라준 덕택에 행사장이 장관을 이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이제는 경험과 요령이 쌓여 어느 무대에서 어떻게 진행할지 감이 오지만 초창기에는 실수도 많았다고 한다. 행여 무대가 썰렁해지면 어떻게 되살릴지 당황도 많이 했다. 출연자 이름을 틀린 적도 더러 있었다. 그는 “실수도 많았지만 이런 것들이 지금 커다란 경험이자 공부였다”며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것이 결국 실력으로 남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금은 광양 이외의 지역에서 타 지역 섭외 요청 많이 들어온다. 후배 MC들도 그의 진행 실력을 모니터링하면서 배우고 있다. 김 씨는 “공연자들이 무대가 끝나면 진행을 잘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을 때 정말 행복하다”고 웃었다.


삭막한 시대…
억지로라도 많이 웃어라

요즘은 각박한 시대다. 뉴스에서는 연일 살벌한 사건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 여건에 취업난마저 가중되면서 도통 웃을 일이 없다. 김두수 씨는 “이럴 때일수록 일부러 웃도록 노력해야 하고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씨는 “말이 씨가 되는 것처럼 ‘나는 힘들다. 불행하다’라는 절망을 늘 머릿속에 두고 살면 결국 불행해지기 마련”이라며 “암울한 현실도 좋게 보려고 노력하고 많이 웃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웃음치료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웃음은 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감정을 막아주며 면역체계 활성화를 도와주는 방탄조끼역할을 한다”면서 “웃음치료는 어떤 질병의 치료보다는 일상에서 웃음을 생활화해 현대인의 사회적 질병인 스트레스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토크쇼 진행이 목표

김두수 씨의 최종 꿈은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는 “중앙방송에서 저의 이름을 걸고 토크쇼를 해보는 것이 목표”라며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여러 방송 토크쇼를 모니터링하며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니윤, 뽀빠이 이상용을 존경한다는 김 씨는 “이상용 선생님을 최근에 행사장에서 맛난 적이 있는데 일흔이 다된 연세에도 저에게 ‘이놈아 형님이라 불러라’ 하고 격려해줘 큰 힘이 됐었다”며 “선배님들의 토크쇼 진행 솜씨를 보면서 저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쑥스러워 했다.

김 씨는 월요일인 오는 25일 저녁 7시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커뮤니티센터에서 제3회 MC김두수 웃음치료 토크 콘서트를 개최한다. 입장료는 2만원이며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한다. 김 씨는 “경제 불황으로 회사에서는 좌절과, 가정에서 이혼 그리고 사회적으로 우리 모두의 과제인 학원 폭력과 자살사고의 원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양을 비롯해 전국을 다니며 방송과 행사 축제 진행MC로 활동하며 시민들이 보내주신 사랑에 보답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을 담아 콘서트를 준비했다”고 콘서트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남모르게 기부활동도 하면서 밝은 세상을 꿈꾸고 있는 김두수 씨. 그가 꿈꾸는 ‘웃는 세상, 행복한 이웃, 긍정의 힘’이 지역 곳곳에 전파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