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도전]초짜들의 백운산 등정기
[무모한도전]초짜들의 백운산 등정기
  • 이성훈
  • 승인 2013.11.11 11:09
  • 호수 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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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전경

한재에서 비박하려 했지만 결국 철수
아쉬움ㆍ희망 남긴 백운산 등반

‘성불교-형제봉 - 도솔봉 - 따리봉-한재’에 8시간 걸려

 백운산은 상봉과 억불봉만 몇 번 정도 다녀왔을 정도로 백운산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주말이면 백운산 둘레길과 가야산을 오르는 초짜들이다. 한 달 전 쯤 백운산 둘레길을 걷다가 후배인 이정현이 “백운산 종주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귀가 솔깃했다.

광양신문 창간 14주년 특집으로 비박을 하면서 종주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라 생각했다. 백운산 국립공원 지정 운동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제안은 시의적절하다는 판단이 섰다. 이렇게 해서 해프닝으로 끝난 백운산 1박 2일 등정기는 시작된다.

# 산행 준비 “비박? 종주? 그게 뭐지?”

17년 전 대학 여름방학때 지리산 노고단에서 산청 대원사로 오는 코스를 2박 3일인가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후로 종주는 커녕 백운산 휴양림에서 한두 번 자본 것이 전부다.

산행에 앞서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서영준 태인동장이다. 공무원들의 말에 따르면 서영준 동장과 등반하면 절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해 ‘산다람쥐’라 불린다고 한다.

서영준 동장을 찾아가 백운산 1박 2일 코스 산행을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지도를 잠시 살펴보던 서 동장은 백운산 등산 코스인 5코스를 지정해줬다. 5코스는 ‘성불계곡-형제봉-도솔봉-따리봉-한재-신선대-백운산’에 ‘노랭이재-제철수련관’을 합한 길이다. 서 동장은 “5코스는 하루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데 1박 2일을 하려면 ‘노랭이재-억불봉-제철수련관’ 코스를 포함시키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서 동장은 “지금 시기에 산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은 매우 춥고 위험할 수도 있다”며 “잠자는 것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고 걱정했다. 서 동장으로부터 코스와 준비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정다임 산림자원과 숲 해설가를 찾아갔다. 정 해설가는 백운산 지도를 제작할 정도로 산 전문가다.
숲 해설뿐만 아니라 등반 안내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다임 해설가는 “비박을 하려면 텐트보다는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무게도 가볍고 아무래도 초보 산행가들이 많은 짐을 가지고 가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다. 정 해설가는 각 코스별 시간과 준비해야 할 것도 꼼꼼히 체크해줬다. “산행 전날 한재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가져다 놓으면 부담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 출발, 시작부터 숨이 ‘턱’

산행에 동행한 이정현 후배. 눈감았다. 미안

월요일인 지난 10월 28일 후배 정현이와 산행을 나섰다. 오전 8시10분 성불계곡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짐을 꾸렸다. 전날에 포스코 수련관에 차를 미리 한 대 세워났기 때문에 교통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등산 코스는 ‘성불교-형제봉-도솔봉-따리봉-한재-신선대-정상-노랭이재-포스코 수련관’으로 지도상에 따르면 길이는 총 19.7km. 약 20km이며 산행 시간은 어림잡아 10시간 이상이다. 지도상에 나온 제5코스를 통과하는 시간은 6시간 10분. 하지만 이는 산을 자주 가는 사람들에게 해당되지 초짜들에게 6시간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두 명이 들고 간 물은 500ml 10개. 1인당 다섯 개씩 짊어지고 갔다. 여기에 침낭, 삼각김밥, 옷 등을 작은 배낭에 꾸역꾸역 채워놓고 오르기 시작했다. 물이 적어 걱정됐지만 배낭 무게 때문에 많이 가져갈 수도 없었다.

형제봉 가는 길. 성불교에서 형제봉까지 지도상 거리는 2.7km다. 정다임 해설가는 “경험이 많은 사람은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초보자들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고 귀띔했다. 정 해설가의 말은 사실이었다. 형제봉은 처음 가본 코스였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이십분 정도 올라가니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양손에 스틱을 잡고 한걸음씩 떼어 보지만 계속 오르막길만 보이니 금방 지치고 말았다.  얼마 못가 물 한 병을 따서 벌컥 마신다.


# 오르락 내리락 “왜 산을 오를까”

호락호락하지 않은 백운산 산행길.

형제봉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거의 쉬는 코스 없이 올라가기만 했다. 한걸음 내디딜 때 마다 평지가 곳곳에 있는 백운산 둘레길이 정말 그리워질 뿐이다. 물 한통이 어느새 훌쩍 비워졌다. 남은 물은 이제 4통. ‘억불봉 가는 길에 ‘취정’이라는 샘이 있다던데 거기 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산행 한지 1시간 30분이 넘어 정확히 10시에 형제봉에 도착했다. 백운산 정상과 억불봉 이외의 봉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형제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장관이었다. 특히 구례 쪽으로 보이는 산은 구름이 가득 덮고 있어서 더욱더 황홀한 풍경이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것일까’ 고생했던 두 시간의 기억은 정상에 오르니 말끔히 사라진다. 형제봉에 도착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도솔봉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좀 더 수월했다.

도솔봉은 오후 12시에 도착해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또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도솔봉에서 따리봉까지는 처음부터 급경사로 내리막길이 500m 정도 이어졌다. 내리막길이 더욱더 힘들었다. 체중을 오로지 다리에 의지해야 했기에 금방 무리가 갔다. 1시 50분쯤 따리봉에 도착했다.

따리봉은 정상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경치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따리봉에서 한재까지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을 걸었던 탓인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이리저리 투덜거리며 쉼없이 간 끝에 3시 20분 쯤 한재에 도착했다.


#초라한 비박, 누워서 별보는 낭만

어설픈 비닐텐트


한재에서 조금 쉰 다음 비박할 장소를 물색하고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스틱 네 개를 이용해 기둥으로 삼고 노끈으로 네 귀퉁이를 단단히 조이자 그럴듯한 비닐 천막이 나온다.

날이 슬슬 저물기 시작한다. 6시가 되자 짙게 어둠이 깔리고 사방이 조용하다. 적막한 가운데 비닐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비닐텐트 속의 휴식


둘이 잠시 선잠만 잔 가운데 침낭을 둘러쓰고 눈만 지그시 감고 있다. 라디오를 켠다. 한국시리즈 삼성과 두산 4차전을 중계한다. 얼마 만에 라디오에서 들어보는 야구 중계인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비닐 천장 밖으로는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야구 중계 들으며 별보는 재미는 정말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낯선 곳,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인해 몸은 자꾸 뒤척인다. 둘은 이렇게 몇 시간을 비비적거렸다. 


#“정신 나간 녀석들! 신문에 나려고 작정했냐?”

10시가 조금 지나자 차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누가 한재를 건너가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천막 친 곳에 멈추더니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우리를 부른다. 위스타트 광양마을에 근무하고 있는 박훈 형이었다. 후배가 천막에서 장난삼아 메시지를 몇 번 보냈는데 그 후로 연락도 두절되고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보니 걱정이 돼서 한밤중에 차를 몰고 올라온 것이다.

훈이 형은 우리를 보자마자 “멧돼지 밭에서 죽으려고 환장했느냐”며 성화를 부렸다.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어서 매우 위험하다는 것. 더군다나 비닐로 천막을 쳤으니 절대 안전할 수 없었다. 훈이 형은 비닐에 가득 찬 습기가 한밤중 되면 습기가 언다며 곧바로 철수를 지시했다. 아니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라며 천막을 직접 뜯어내고 강제적으로 철수시켰다. 결국 안전이 우선이라는 판단으로 밤 11시경 철수하고 말았다. 돌아오는 내내 아쉽고 씁쓸했다. 

그렇게 비박은 절반의 성공으로 마치고 말았다. 산행도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다. 다음날 일찍 출발하려고 했지만 초보 산행가들의 몸과 마음은 한재에서 내려오는 순간 이미 긴장이 풀리고 만 것이다. 상봉과 억불봉은 과거에 몇 번 올랐던 기억으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백운산 곳곳에는 구급함이 있다. 필요 시 119에 전화하면 된다.
#자연은 역시 위대하다

창간 14주년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 위해 산행을 했지만 기사 외에 얻은 경험은 소중했다. 산은 역시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백운산은 상봉과 억불봉만 생각했다. 백운산 줄기에 이처럼 다양한 봉우리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우리가 올라간 봉우리들 말고도 백운산 줄기에는 다양한 봉우리와 산들이 연결돼있다. 코스도 억불봉 코스부터 시작해 제1~8코스까지 여러 가지다. 종주코스는 총 길이가 50km로 소요시간만 무려 24시간 20분이 걸린다. 

후배 정현이는 “백운산 둘레길만 걷다가 이렇게 큰 봉우리를 하루에 세 개나 올라가나 정말 힘들고 지쳤지만 뿌듯했다”고 슬며시 웃었다. 다음 산행에는 철저히 준비해서 꼭 성공하자는 말과 함께.

이번 백운산 종주는 실패라기보다는 절반의 성공이다. 자신감이 붙고 백운산의 위대함과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뿌듯함이 가슴 깊이 남았다. 산행도 많이 가고 경험도 쌓아 언젠가는 광양신문 창간 기념일에 맞춰 백운산 종주 50km를 꼭 해볼 것을 다짐한다. 

*산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서영준 태인동장님과 정다임 산림자원과 숲해설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