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자가 뛴다
특집- 기자가 뛴다
  • 이혜선
  • 승인 2013.11.11 11:52
  • 호수 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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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이 쌓인 양파껍질 까며 눈물이 ‘주룩주룩’한꺼번에 쏟아지는 설거지에 ‘멘탈붕괴’


‘청결ㆍ신속ㆍ정확’ 기본, 점심때만 250여명 이용 … 팀워크가 생명  
양파까기, 무 다듬기, 설거지, 배식, 정리정돈 … 밥 한 그릇의 소중함

‘청결ㆍ신속ㆍ정확’ 기본, 점심때만 250여명 이용 … 팀워크가 생명   양파까기, 무 다듬기, 설거지, 배식, 정리정돈 … 밥 한 그릇의 소중함

 

광양신문은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으면 대부분 점심을 광양시청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매일매일 다양한 메뉴로 제공되고 갓 조리된 반찬과 따끈한 국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청 직원들뿐만 아니라 기업체, 일반 시민들도 애용하는 시청구내식당.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끼를 제공하는 이곳은 점심때가 되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한 직장인들로 붐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방문객을 평균 250~300여명. 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12시 쯤 식당을 찾아 10~20분 사이에 식사를 마친다.

250인분 이상의 밥과 반찬, 국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짧은 시간 동안 몰리는 방문객들에게 불편함이 없이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동안 주는 밥 편하게 먹다가 이번에는 직접 주는 입장이 되어보기로 한 이 기자! 4시간 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식판위에 담긴 음식들에 감사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 이 기자가 직접 뛴 시청구내식당 체험기 속으로~


“제가 체험을 좀 해볼 수 있을까요?”

시청구내식당 체험을 위해 위탁업체로 선정돼 3년 째 운영을 맡아오고 있는 정진홈푸드(대표 김형채)에 문을 두드린 이 기자. 낯선 이가, 그것도 기자가 직접 체험을 하겠다니 회사 차원에서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텐데 정진홈푸드는 체험을 흔쾌히 수락했다.

12년 째 정진홈푸드에 몸을 담고 있는 김점석 부장과 체험 할 날을 조율하고 체험에 필요한 것들을 논의하기 위해 몇 차례 더 통화를 주고받았다. 체험을 위한 준비물은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하겠다는 의지와 인내, 그리고 튼튼한 체력이었다.


‘신속정확’하게 대량 재료 다듬기

신문사로 출근하는 이 기자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던 지난달 31일. 이 기자가 시청구내식당 체험을 하기로 한 날이다. 회사로 먼저 출근했다가 약속시간인 10시에 맞춰 시청 지하 1층에 도착.

그동안은 12시쯤 와서 줄 서 있다 식판 들고 밥만 먹고 갔었는데 10시에 와보니 여간 낯설지가 않다. 김점석 부장이 준비한 위생 모자와 위생복, 그리고 빨간 장화를 전해 받으니 이제 서야 실감이 난다.

근무하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탈의실 겸 휴식 공간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선배님이 챙겨준 앞치마까지 착용하고 나니 일할 준비 완료. 괜히 맘이 두근거리고 들뜬다. 새로운 일을 해본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었을까.
박재은(27) 영양사와 박용숙(55) 씨, 전선미(43) 씨, 이연미(44) 씨, 이유림(31) 씨 등 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시청구내식당은 출근시각은 다다르지만 맡은 바 업무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선배님들은 이미 점심 준비를 위해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 기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무 다듬기. 어른 종아리만한 무를 씻고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하게 된 이기자가 처음부터 잘할 리가 없다. 나름 주부경력 5년인데 최고참 박용숙 씨의 숙련된 시범에 깨갱하고 만다. 구내식당 일의 키포인트는 ‘신속정확’이다. 왼팔에 근력이 향상됨을 느끼며 부지런히 무를 다듬었다. 마무리가 되어가자 박용숙(55) 씨가 “잘했다”고 칭찬 한마디 날려주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분 좋아진 이 기자에게 주어진 다음 미션은 양파 한 접 까기. 아……. 무조건 대량이다. 양파가 100개 들어있는 망을 풀어주며 이번에는 이유림 씨가 양파 까는 비법을 알려준다.

 



“아이 키우는 여자들이
  할 만한 일이 더 많아 졌으면”

양파를 까는 동안 이제 3개월째 일을 하고 있다는 유림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세 아이의 엄마인 유림 씨는 일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일을 찾기가 힘들었단다. 이 곳 일은 9시에 출근해 3시에 퇴근할 수 있어서 어린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탄력근무제다 유연근무제다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이나 관공서에만 한정돼 있을 뿐 피부에 와 닿는 환경은 아닌 현실.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빨리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11시가 넘어가자 더욱 손길이 분주해진다. 이유림 씨는 밥통에서 갓 지어진 밥을 커다란 그릇에 옮겨 담고 박용숙 씨는 커다란 통에 겉절이를 버무렸다. 이연미 씨와 이 기자는 눌러서 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기와  감자 따로 조리한 오늘의 메인 메뉴 닭볶음탕을 골고루 섞으며 그릇에 옮겨 담았다.

이연미 씨는 “닭볶음탕 같은 육류로 만든 요리들이 인기가 많다”며 “이런 요리가 나올 때는 음식을 채워 넣기가 바쁘다”고 말했다. 그 사이 전선미 씨는 홀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쓸고 닦는다.

음식이 준비됨과 동시에 음식 준비에 사용했던 조리 도구들과 커다란 냄비들도 순식간에 세척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11시 40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닭볶음탕, 겉절이, 버섯볶음, 깻잎장아찌와 김치, 시원하게 끓여진 미역국까지 이제 손님들을 맞을 준비가 완료 됐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

12시가 가까워지자 딩동(식권 넣을 때 나는 비프 음)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전선미 씨는 쉴 새 없이 국을 뜨고 유림 씨와 이 기자는 퇴식구에 자리를 잡고 업무를 기다린다.

배식은 총 3군데에서 이뤄진다. 순식간에 수백 명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피크 시간이 되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한다. 밥이 떨어지면 밥을 채우고 금세 비워지는 반찬도 바로바로 채워야한다.

이 기자의 심장박동 수가 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번째 식판이 퇴식구로 들어왔다.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고 국그릇과 식판을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 선 작업을 진행하는데 처음에 한두 개는 해볼 만했지만 사람들이 밀리기 시작하자 이 기자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결국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식기들을 정리하는 업무를 맡게 된 이 기자. 순식간에 수십장, 아니 수백 장의 식판과 그릇이 쌓인다.

 

 

 


이 모든 일들이 약 30분 동안에 일어났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페이스를 잃게 되니 정적이 흘렀다.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그릇들을 살균기에 넣는 일이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등과 허리가 뻐근해짐을 느꼈다.

12시 40분이 넘어가자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이고 식판이 들어오는 간격도 길어졌다. 쌓여있는 식기들을 부지런히 세척기에 넣고 빼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시 반이 됐다. 항상 12시에 밥을 먹던 이 기자의 뱃속은 이미 전쟁터였다. 하지만 시청구내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 점심은 배식이 모두 끝난 뒤 2시쯤 이뤄진다.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홀로 나온 직원들과 이 기자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이 기자는 평상시보다 20분 정도 빨리 끝난 것 같다는 선배님들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도움이 안 되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참여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어려워지니
구내식당 찾는 사람 더 많아져

남은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아 우리들만의 점심시간을 가졌다.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박용숙 씨는 “작년에 비해서 확실히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밥 한 끼가 7000원을 훌쩍 넘으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구내식당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청 구내식당도 4000원이면 갓 지어진 밥과 4가지 반찬에 따뜻한 국을 먹을 수 있으니 시민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 기자, 다음에 또 와!”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마시며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고작 4시간인데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니 기분이 묘해졌다. 이연미 씨는 “오늘은 평상시보다 한가했다”며 “제대로 체험을 하려면 월요일에 와야 한다”고 웃었다. 박용숙 씨도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이 기자가 또 온다고 하면 언제든 환영하겠다”고 말했다. 아쉬움에 단체 사진을 찍어본다.

서로 안 찍겠다고 하더니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쳤다. 이 사람들 매력 있다.

당연하게 생각한 밥 한 끼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이 기자는 땀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 | 박용숙 씨

“음식물 쓰레기 줄여주세요”

구내식당은 자율급식이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식판이 들어오는 걸 보면 남긴 음식이 만만치가 않다. 순식간에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찬다.

박용숙 씨는 “처음부터 많이 떠가는 것보다 적당히 가져가고 부족하면 더 가져다 먹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며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박용숙 씨는 “재료들을 키우고 수확해서 유통하고 또 그 재료들을 손질해서 요리로 내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느냐”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체험에 적극 협조해주신 (주)정진홈푸드 임직원 여러분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