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전,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이 주도한다
지역발전,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이 주도한다
  • 이성훈
  • 승인 2013.11.25 11:03
  • 호수 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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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자와, 제대로 된 문화시설이 도시를 바꾼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1. 철공소와 문화가 공생하는 ‘서울 문래예술공장’
2. 구도심 재생사업의 상징 ‘인천 아트 플랫폼’
3. 보존에서 창조로 ‘일본 가나자와’
4. 예술의 섬으로 뒤바뀐 ‘나오시마’
5. 지자체 문화 경쟁력 대안은 무엇인가 

 

 


시민예술촌ㆍ미술관ㆍ창작의 숲, 지역경제 동력

가나자와(金澤) 시는 일본 혼슈의 중서부 지방에 위치한 이시가와(石川) 현의 행정ㆍ교육ㆍ문화 중심지며 인구는 45만여 명이다. 가나자와는 16세기 후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 가신이었던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가 가나자와 성에 입성한 이후 본격적으로 도시가 조성됐다.

일본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가가유젠(염색), 금박 등의 전통 공예 기술과 다도 등 수많은 격조 높은 전통문화가 꽃을 피웠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도쿄 오사카 등에 비해 공업화가 늦어지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가나자와는 최근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문화예술교육 중심 창조도시로 부활하고 있다. 2009년 6월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창조도시 네트워크(크래프트&포크 아트 부문)의 일원이 됐다. 1996년 조성된 시민예술촌과 2004년 문을 연 21세기 미술관, 2003년 개소한 창작의 숲 등 3대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이 바탕에는 일찍이 '보존에서 창조로'를 기치로 문화예술과 환경의 중요성에 주목한 행정기관의 정책과 시민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 묵은 공간을 재활용해 새로운 창조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그 목적은 오로지 시민 행복도시를 만들겠다는 일념이었다. 그것이 외부에 알려져 명성을 얻고 지역 활성화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시민예술촌에서 엄마와 어린이가 체험학습을 함께하고 있다.

 


100년 된 방직공장이 ‘시민예술촌’으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지난 1996년 개관했다. 축구장 2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잔디밭과 붉은색 벽돌 건물, 그리고 그 앞의 연못으로 구성돼 시민들이 휴양의 장소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공원에 예술촌이 가미된 곳이다.

호쇼 유타카 촌장은 “100년 이상 건재했던 방직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이 부지를 시 정부가 사들여서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는 시민 여론이 일었고, 시 정부와 시민이 머리를 맞댄 결과로 3년여의 기간을 거쳐 시민예술촌이 탄생했다. 어찌 보면 모험이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시민예술촌은 4동의 창고 건물이 있는데 각각 드라마 공방, 뮤직 공방, 에코라이프 공방, 아트 공방으로 구성돼 있다. 중간에는 야외 콘서트와 전시회 등을 할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도 있다.

이곳은 낮에 일하는 시민도 심야에 사용할 수 있도록 연중무휴 24시간 개방을 원칙으로 운영된다. 관리와 운영은 시민으로 구성된 가나자와예술창작재단에서 전담한다. 촌장도 이 재단에서 선출한다. 예술 관련 동아리의 연습 및 공연, 전시가 가능하고 어린이 예술 교육 및 체험도 이뤄지며 노년층의 문화예술 공간 역할도 한다. 관리 운영비는 이용료 10%를 제외한 나머지를 시 예산으로 부담한다.

시민예술촌은 개관 후 6개월간 10만 명의 시민이 참가했고, 이후 5년간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겼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240만 명이 이용했다. 유타카 촌장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외지인들도 많이 오는데 그것이 도시 활력으로 확대 재생산된다”고 말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21세기 미술관’

가나자와 시청과 가나자와 성 및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 인근, 즉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은 '21세기 미술관'은 문화예술 창조도시 가나자와의 현대적 랜드마크이다. 초중고교가 이전한 자리에 2004년 토지 구매비 포함 200억 엔을 들여 완공한 이 미술관은 지난해까지 이미 328억 엔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만들어 냈다. 개관한 지 1년 만에 시 인구의 3배를 훨씬 넘는 157만 명이 방문하기도 했으며 매년 150만 명 이상이 꾸준히 찾고 있다.

 

21세기 미술관


미술관은 완전하게 둥근 원형의 납작한 건물은 외벽을 모두 120장의 대형 유리를 연결함으로써 안팎의 경계를 허물었다. 동서남북 4개의 출입문은 건물의 앞뒤를 없앴다. 공동 설계자인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는 이 건물로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경계와 정형을 허문 개방성이 특징인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걸작품인 셈이다. 그래서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몰려들고 있기도 하다.

오치아이 히로아키 홍보실장은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이면서 동시에 학생들의 작품 발표의 장이 되거나 미래를 이끌어갈 초등학생들을 위한 예술문화교육활동의 장이기도 해, 문화 창조의 중심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초등학생은 4학년 때 누구나 필수적으로 미술관 체험을 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돼 있다. 제임스 터렐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적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며 대부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유료로 운영되는 특별전은 1년에 4, 5회 열린다. 누구나 이용 가능한 도서관, 카페 등이 있는 교류 존도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으며 밤 10시까지 무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예술가들의 공간 ‘창작의 숲’

가나자와 창작의 숲은 9만 ㎡ 규모의 공간이며 오래된 일본 전통 여관 건물을 재활용했다.  숙소와 사무동 등이 자리한 본관 건물 외에도 4개의 공방 건물과 1개의 세미나건물이 호젓한 숲과 조화를 이룬다. 모든 건물이 100년 이상 된 지역 전통 가옥을 옮겨놓은 것이다.

연간 2만여명이 이용하고 있는 이곳은 가나자와 지역의 젊은 전통 공예 예술인 수십 명이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입주해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의 가족 또는 동아리 단위의 숲 속 문화 체험 및 전통 공예 체험장의 역할과 아웃도어 휴식공간 및 세미나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운영은 모두 시민 자생 조직으로 운영된다. 구로자와 신 소장은 “입주한 젊은 전문예술인에게는 소액이지만, 창작 지원금까지 지원되고, 이들이 때대로 시민과 어린이들에게 강사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인터뷰 | 도기시 유타카 가나자와시 문화정책과장

“문화는 도시 매력과 활력의 원천”

도기시 유타카 가나자와시 문화정책과장은 가나자와시 중점 문화정책에 대해 “시민이 문화와 예술을 누리고 즐김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역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가나자와시 문화정책은 크게 5개 부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화예술 발전에 현저한 공헌이 있는 사람에 대한 표창 △새로운 문화 창조 △에도시대부터 쌓아온 면면한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한 방안 마련 △행정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를 돕고 활성화하는 문화사업의 조성, 시설관리 등이다.

도기시 과장은 “2010년 가나자와를 찾는 관광객 수가 815만명이었다”며 “시 인구가 45만 명 정도이니 20배 가까운 관광객이 온 셈이다”고 설명했다. 시는 관광명소 방문에 문화예술 명소 방문과 창작 체험을 조합시킨 코스를 만들어 ‘크래프트 투어리즘’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런 정책이 관광 활성화로 이어져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는 것.

도기시 과장은 “문화예술 시설들은 그 자체 입장료, 관람료 등으로 이익을 많이 거두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문화시설은 많은 사람이 도시를 방문하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다”고 말했다. 사람이 오면 도시에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도기시 과장은 “문화는 도시 매력과 활력의 원천이라는 생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면서 “2015년 도쿄-가나자와 간 신칸센이 개통예정인데 2시간이면 올 수 있다. 가나자와가 또 한 번 도약할 기회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지역 대학생들로 구성된 문화예술 시설 및 아이디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추진 등 인재 육성, 문화 비지니스화 정책 강화, 세계로의 약진 등을 주요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