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강세와 프래그머티즘
잡종강세와 프래그머티즘
  • 광양뉴스
  • 승인 2014.02.17 10:25
  • 호수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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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농학박사 원광대 생명자원과학대학 겸임교수
지난 설에 객지 친구들을 만났다. 수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억양까지도 변했다. 얼굴이야 나이 들어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투는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광양 특유의 억양은 수십 년이 흘러도 고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말투를 고친 배경에 대해 물었다. 예상대로의 답이 나왔다. 객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말투부터 바꿨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힘들게 영어공부를 안 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처럼 광양이 부자 도시였으면 많은 사람들이 광양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써 왔던 말투도 바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생기기 전까지 광양은 여느 시골처럼 생산성이 높지 않아 많은 분들이 자의반 타의반 고향을 떠났다. 대부분 의지하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객지의 낮선 환경 속에서 이방인의 서러움에 눈물을 흘려가며 고된 삶을 이끌어 왔을 것이다.

국제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타 지역 출신에 대한 끼리끼리 문화의 벽은 너무 높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말투라도 바꿔야 경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음은 객지 생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되는 부분이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도 선거 때가 되면 아버지 고향이라는 이유 때문에 원적지를 찾고, 개천에서 용났다고 자랑하던 사람들도 개천으로 회귀하여 고향에서 출마하는 세상에서 말투를 바꾸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객지 생존기쯤이야 웃지 못 할 촌극이다.   

광양제철소가 생긴 이후 광양은 전남의 다른 시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 지역 출신들의 비율이 높아졌다. 다른 지역 출신들이 많아진 것은 생물학적 입장에서 보면 축복이다. 상당수의 타식성 식물은 가까운 혈족끼리 교배하게 되면 빈약한 자식이 만들어진다.

미물인 식물은 본능적으로 강한 자식을 얻기 위해 낯선 식물의 꽃가루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암꽃과 수꽃의 형태와 개화시기를 조절하여 근친간의 교배를 피하고 있다. 낮선 다른 꽃들과 교배를 하여 만들어 진 자식은 양친보다 우수한 잡종강세(hybrid vigor heterosis) 현상을 보이며 농업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타 지역 출신들이 많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선택의 범위가 넓어진다.

인간의 발달과정을 개인과 환경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생태학적 접근(ecological approach) 측면에서도 축복이다. 세계 최고의 강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매우 짧다. 17세기 이후부터 이주해 온 영국인들은 18세기 초에 13개의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1774년 7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그 후 200년이 되기 전에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되었다.

다민족국가, 다종교, 다문화가 유입되었지만 이것들을 배척하지 않고 경쟁을 하여 우수한 것들을 선택한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실용주의)이 발달한 결과이다. 미국에서 프래그머티즘은 더욱 진화하고 있으며, 흑인 아버지를 둔 대통령까지 탄생시켰다.

미국과는 달리 출신, 종교, 종족,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살상과 파괴를 일삼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해 세계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곳들도 많다. 이 두 가지 모델은 인문사회학적 측면에서 논란이 있지만 큰 틀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의 선택은 다문화를 아우리고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음을 보여 준다.

객지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고향에 계시는 분들께 바란다. 우리 광양만큼은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지역 출신들을 배척하지 않았으면 한다. 타 지역 출신이라도 능력이 있고, 성실하면 광양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고 함께 일해야 한다.

다른 지역, 내 지역 출신의 구분 없이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광양의 인정을 함께 나누고, 같이 웃고 울며, 호흡하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 갈 때 후세대들은 또 다시 광양을 등지고 객지 생활을 전전하며, 말투까지 바꿔가면서 살아야 하는 서러움에 젖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