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제주도 가는 배 타 보니
세월호 참사 이후, 제주도 가는 배 타 보니
  • 김양환
  • 승인 2014.05.12 11:18
  • 호수 5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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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 환 발행인
지난 5월 3일부터 5일까지 제주도를 다녀 왔다. 세월호 참사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간다는 것이 마음 편하진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던 모임이어서 고민 고민하다가 일행들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출발했다. 

3일 오전 9시 배를 타기위해 녹동항에 1시간 전쯤 도착했다. 녹동항 여객선 터미널은 배를 타기위한 여행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황금연휴라고는 하지만 세월호 사고 여파로 한가할 것이란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필자가 제주도 여행을 결정한 이유 중에 하나는 광양을 비롯해 전남 동부지역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녹동에서 제주간 배편의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서였다.

녹동-제주간을 운항하는 배는 ‘남해고속카훼리7호’다. 이배는 선령이 20년이 넘은 노후된 배로 세월호 참사 이후 긴급 점검에서 문제가 발견돼 시정한 뒤 운항하고 있다. 

출항 시간 1시간 전부터 시작된 탑승 절차는 예전 기억 보다는 상당히 꼼꼼한 확인을 거쳤다. 주민등록증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이름을 확인했고, 단체인 경우는 정확한 인원 파악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우리 일행은 배에 올라 3등 선실에 자리를 잡았고, 어림잡아 150명 정도의 승객이 끼리끼리 둘러앉았다. 어느 정도 자리를 확보한 승객들 중에는 구명복을 가져다 옆에 두는 사람도 있었고, 자녀와 동반한 부모는 구명복을 입는 방법을 자녀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필자도 구명복 보관함을 열어 보니 구입 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새 구명복이 많았고, 보관함에는 성인용 104개라는 갯수가 적혀있었다.

승객은 150명인데 구명복은 104개 밖에 없어서 모자란 구명복은 어떻게 하느냐고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대답은“글쎄요”였다. 세월호 참사 때 모자란 구명복을 친구에게 주고 사망한 학생의 눈물겨운 사연이 떠오른다. 화물이 실려 있는 선실 외부를 둘러봤다. 그날은 컨테이너 같은 화물은 없고, 화물차와 승용차만 실려 있었다. 차량들은 받침목을 대고 네 바퀴를 단단히 묶어 안전하게 보였다. 바퀴를 묶는 줄이 새것들이 많은 것이 이번 점검에서 교체한 듯 보였다.

화물을 싣고 내리는 관계자는 녹동항은 화물선이 있어서 평소에도 많은 화물은 싣지 않고 차량이 대부분이라 했다. 이 배도 구입한 후에 세월호 처럼 객실을 줄이고 화물칸을 늘렸다 한다. 이유는 승객보다는 화물을 실어야 매출이 많아지기 때문이란다. 승객만 실으면 기름값도 안 된다는 것이  승무원의 얘기다. 혹시 평소 위험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승무원은 세월호 사고 이전부터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먹고 사는 것이 우선 아니냐는 대답이었다. 그는 다른 회사로 옮긴다 해도 역시 거의 모든 배들이 노후된 선박이어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는 것이다.

선실 이곳 저곳을 돌아봤지만 출발하는 날이어서 그런지 승객들은 간단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하는 등 조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5일 돌아오는 배편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출발할 때 보다 많은 인원(980명 정도)이 탑승해 늦게 배에 오른 사람들은 앉을 자리 조차 없었다.

객실 복도는 물론이고 화장실 앞까지 돗자리는 펴고 앉았다.

한쪽에선 술자리가 벌어져 고성이 오가고 다른 쪽에선 화투 놀이를 하는 등 질서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승무원이 찾아다니며 말려 보지만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월호의 충격은 다들 잊은 것 같은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 원인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일어났다. 배의 선령이 30년이라는 제도적 문제, 관리감독의 문제점, 최소한의 양심조차 버린 청해진해운 등 총체적 부실의 결과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스로가 질서를 지키고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