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이 성군을 만든다
충신이 성군을 만든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06.09 09:37
  • 호수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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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시인·수필가
자고로 성군이란 큰 업적을 남겼고 훌륭한 충신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나 충신은 지와 예가 능할지라도 정의와 공평을 중시하는 바탕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좋은 신하는 양신(良臣)ㆍ충신(忠臣)ㆍ지신(智臣)ㆍ정신(貞臣)ㆍ직신(直臣)으로 구분되며, 나쁜 신하로는 유신(諛臣)ㆍ참신(讒臣)ㆍ적신(賊臣)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습되던 왕권시대의 기준일 뿐,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오로지 민본(民本)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임기는 법과 원칙에 따라 최고 책임자의 재량으로 결정될 수 있지만 백성의 뜻에 따라 교체할 수 있다.

다만 집권자 혼자만 좋아해서도 아니 되고 국민만 좋아해서도 아니 된다. 통치자와 만백성이 함께 좋아하는 신하가 참다운 신하일 것이다.

우리는 일제를 벗어나 영토와 주권이 확립되고 헌법이 발표됨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한지 어언 66년이 지났다. 성년을 넘어 환갑이 지난 지금도 민주주의를 생취해야한다는 소리가 세론으로 대도시로부터 산간오지까지 번져 있으니 이래도 되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모두의 책임이다. 민주주의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18번이나 뽑아 국권을 위임했다. 그러나 치적보다 추한 업적만 남겼기 때문에 대부분 하야(下野) 후에는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지탄을 받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 성군도 충신도 많았다. 그러나 군주 보다는 좋은 신하가 나라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권력쟁탈을 위해 정파로 국정을 흐리게 한 간신도 더러는 있었다. 권좌에 있음이 통치권자에게 누가 된다면 스스로 물러 날줄 알아야 참신(讒臣, 참소 잘하는 간사한 신하)이라도 면할 수 있을 진대 여론의 화살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둔치 이전에 슬픈 인간이다.

침실에서 식탁에서 마주할 대상이 한사람도 없어 고독에 젖어 있는 제왕의 어버이 역이라면 공정과 평등을 지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라. 그러나 고질적이 병폐인 지역적 불균형과 인사의 탕평책을 계속 거역한다면, 역사의 기록에 진나라의 이사나 조고와 같은 간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충신이 성군을 만든, 중세에 치적을 많이 남긴 고려 문종(文宗)은 학문을 좋아했고 서예에 능하였으며 재임기간이 37년(1046-1083)이나 되었다. 임금은 덕을 쌓아 치세기간에 책사인 최충(崔?)을 등용해 선정을 베풀었다. 그로 하여금 만든 법, 공금전시법ㆍ연재면역법ㆍ3월시수법ㆍ국자재생의 효교법 등을 제정케 하여 개혁에 성공했다.

최충은 문종 대에 7년간 봉직했지만 관직을 떠난 후에도 왕은 국정전반에 걸친 문제를 논의하는 자문을 청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는 원리원칙에 얽매여 옹졸하게 처신할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매사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성군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주변상황을 적절히 활용하여 국부(國父)로써 위험과 통치자로서 책임감을 잃지 않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번은 왕이 개경(開京)을 떠나 한 달간 남쪽으로 순행을 떠났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마을에 1년 치 세금을 감해주었다.

그 연유는 임금님의 행차로 백성들이 생업에 지장을 입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덕치를 실행했기 때문에 군왕으로 추앙을 받았다.

문종은 왕이 되기 전부터 인의예지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 받았고 즉위하자마자 왕실의 사치 풍조를 개선하는데 모범을 보였다. 호화스러운 용상과 침전의 이불도 금침이 아닌 것으로 바꾸었다.

내시의 수는 줄이고 변방에서 공을 세운 병사에 대하여는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또한 퇴임해 몸을 의지할 수 있게 방석과 지팡이를 주고 일을 보게 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고령으로 은퇴한 그는 자신의 집에 사숙(私塾)을 열어 제자를 받아들이니 바야흐로 ‘해동공자’ 최충의 학당시대가 열리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입이 있는 자, 글을 쓰는 자 모두가 안영하지 못해 참담한 심정에 빠져있으며 이 슬픔이 온 세상에 스며있으나 이를 느끼지 못하는 지도층……지금의 사회는 구조적인 모순위에 경영의 불실이 쌓이고 쌓여 치유하기 힘든 중병에 신음하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인사와 부패척결 그리고 학연과 지연에 얽힌 악의 고리를 끓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깨끗하고 밝은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는 처방전을 제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