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5>“광양 대표하는 전통주 만들고 싶어요”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5>“광양 대표하는 전통주 만들고 싶어요”
  • 광양뉴스
  • 승인 2014.07.14 09:39
  • 호수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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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음식·전통음식 요리연구가 오정숙 -

 

그녀는 적당히 살집이 있다. 손가락에도 오동통하게 살이 붙었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으로 만든 음식은 왠지 맛있을 것 같은 기대를 주는 손이다.

방송을 통해 보는 요리연구가는 대체로 통통한 사람이 많다. 요즘 TV만 틀면 나와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는 이혜정씨도 그렇고 궁중요리연구가라고 알려진 한복선 씨도 푸근한 느낌이다.

그녀를 만나는 날은 여름 장맛비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개업한 지 두 달 남짓 된다는 광양읍에 있는 유기농 밥상 <봄날>에서였다. 시멘트벽을 부드럽게 색칠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매화꽃잎 날리는 봄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다.

<매화 꽃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이해인 수녀의 시구에서 따왔다는 글은 멋스러운 글씨체와 함께 운치를 더해준다.

카페 분위기를 낸 식당 정도로 볼 수 있는 이곳이 향토음식 요리연구가‘오정숙’씨가 운영하는 가게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결혼’
사람에겐 일생동안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 기회를 넘겨버리기도 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않고 꽉 움켜쥐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필자가 만난 오정숙 씨는 그 기회를 잘 포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결혼이었다.

그녀는 상고졸업 후 태인동에 소재한 포스코 협력업체에서 일을 했다. 사내연애를 통해 결혼까지 하는 바람에 24살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사내연애를 하면 둘 중 하나는 관둬야 하는 관례에 따른 거였다.

직장인에서 주부가 된 젊은 그녀는 남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혼수품의 하나로 장만한 요리책을 보고 하나하나 요리를 직접 해 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하나면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도 갈비나 잡채를 겉모습이 비슷하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지만 그때는 결혼하면서 요리책자 하나 정도는 가지고 가야 조금은 안심이 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필자 역시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기에 전집 요리책을 혼수품으로 사가긴 했었다.

허나 필자는 몇 번 들춰보지도 않은 채 이사 다닐 때 짐 된다는 이유로 폐기처분 해 버렸었다. 누구는 그걸 계기로 요리명인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누구는 짐 된다는 이유로 폐기처분해 버리기도 한다. 열정을 다하여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였기에 주부 인생 외의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그녀는 요리책에 적힌 그대로 양을 계량해가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요리는 퇴근 후 옛 직장동료들을 초대하여 시식을 하였다. 계량한대로 요리를 했더니 색깔이나 색감이 나오는 게 신기하여 요리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어쩌다 실패한 음식이 생기면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맘에 들 때까지 실습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음식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당시 요리책 매뉴얼에 나오는 거의 모든 요리를 다 만들어 보았다.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따로 요리학원 한 군데 다니지 않았지만 지금도 보기만 하면 대강의 레시피가 저절로 나온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리는 엄마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요리학원 등을 통해 배운다. 그러기에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보다 자신이 잘 하는 요리 몇 가지를 돌려가면서 가정의 입맛을 책임진다.

 그녀, 오정숙처럼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배웠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은 거의 없다.

 

음식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광주김치문화축제에서 우수상
회사동료와 남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그녀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다.

95년에는 황혜선 요리연구가가 원장으로 있는 <궁중음식연구회>에 가입하여 수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녀가 어린데다 원거리 서울까지 가야하는 부담감, 지방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이듬해 96년 <광양시음식연구회>활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요리 실무에 들어간다. 이 연구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맛보기도 하고, 강사를 초빙하여 배우기도 하는 모임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은 그녀의 요리에 대한 목마름을 채우기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공부하기로 작정한 그녀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한다. 방통대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여 사는 그녀가 다니기에는 그만큼 경제적인 곳이 없었기에, 상고와 전문대학 전산학과를 나온 그녀는 화학이 주는 공포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는 걸로 극복하고 드디어 방통대를 졸업하게 된다.

겨우 졸업을 했다고 말하면서 웃는 그녀의 말을 믿어줘야 할까? 요리에 대한 흥미로 시작한 학구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녀는 내친김에 순천대학교 조리석사, 현재는 순천대학교 박사코스를 수료한 상태이다.

그녀의 도전이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잘해야 대학을 맴도는 보따리 시간강사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의 음식명인 오정숙은 없었을지 모른다. 방통대 경력에다 조리전공 석박사, 지방대의 한계로 그녀를 알아주는 곳은 없었다.

과연 나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스스로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바람으로 그녀는 각종 요리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다.

2007 제5회 전국향토떡만들기 경연대회에서 특별상 수상, 2009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한국음식 전시 및 향토음식으로 입상, 농촌진흥청 주최 제1회 생활공감 녹색기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식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국내 유일의 대통령상 수상 음식경연대회인 제16회 광주김치문화축제 2009 김치 명인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이 가장 기억난다는 오정숙 씨. 그도 그럴 것이 김치콘테스트는 국내 각지의 숨은 김치 솜씨꾼들이 참여해 9시간에 걸친 김치 담그는 전 과정을 심사하는 대회이다.

기존 김치 경연대회는 양념이나 배추절임 등을 미리 준비했다가 대회를 하는데 반해 이 대회는 밭에서 배추를 골라오는 것부터 경연이 시작된다. 또 국내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요리의 전 과정을 채점하여 그 어느 대회보다 경쟁이 치열한 행사이다. 이 대회는 기본 배추김치에 본인의 특기 김치 한 가지를 함께 심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오정숙 씨는 특기김치로 백김치를 준비했다.

색깔도 예쁘고 맛있는 백김치를 만들기 위하여 오정숙 씨가 준비한 회심의 재료는 바로 홍화꽃. 뼈에 좋은 홍화씨는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다. 그 홍화씨가 맺히기 전 핀 꽃이 바로 홍화꽃이다. 흔히 잇꽃이라고도 하는데, 그 꽃잎은 연지곤지 찍을 때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또 동양의 샤프란으로 불릴 정도로 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주변에서 흔하지 볼 수 있는 꽃도 아닌데 그걸 요리에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오 씨는 노란 백김치를 만들기 위하여 처음에는 매실도 넣어보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치자도 사용해 보았다. 한데 처음에는 예쁜 색이 나오다가 며칠 지나면 노란빛이 가시고 색이 변색되어 궁리한 끝에 홍화꽃를 생각했다고 한다. 홍화 꽃 말린 것을 실고추처럼 가늘게 채썰어 사용하면 색도 곱고 향기도 좋은 백김치가 완성된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재료를 사용한 탓에 여러 심사위원으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9시간에 걸친 열띤 경쟁 끝에 오 씨는 우수상을 받았다.

광주에서 벌이는 축제여서인지 지금까지 대통령상은 거의 광주 사람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지역색을 벗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가 동반될 때 광주김치문화축제가 전국 축제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광양 대표하는 전통주 만드는 것이 꿈
2013년 신지식인상
그녀는 바쁘다. 옥룡 골짜기에 터를 잡아 집을 지은 지 5년째다. 황토방 겸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단체손님에겐 광양에서 나는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하여 유기농 밥상도 차려준다.

가공공장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을 기본으로 고사리, 신선초, 취나물, 방풍 등의 장아찌를 만들어 판매도 한다. 도선국사 마을과 연계하여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두부, 수제비, 매실음식 만들기 요리강습도 한다. 광양과 순천 여성문화센터에서 밑반찬 만들기와 발효음식에 대해 강의도 한다. 광주서영대학교, 곡성조리고, 강진 마에스터고에서 특강도 한다.

2학기부터는 광양평생교육원에서 술 만들기 강의도 시작할 예정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녀에게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저는 광양사람으로서 광양을 대표하는 전통술 한 가지를 만들고 싶다는 소원이 있습니다. 수제로 잘 만든 술이 광양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요리에 어울리는 술을 만들어 보는 것이 제 꿈입니다. 특색이 있으면서도 맛도 좋은 전통발효주를 만들어 올해 안에 주류 허가를 받아볼 까 생각중입니다.”

한식요리에 맞는 장아찌와 차, 거기다 술까지 곁들인 그녀의 포부는 당차기만 하다. 이십 여 년 가까운 그녀의 한식에 대한 열정이 결실을 맺어 그녀는 2013년 농림축산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상을 받았다.

이 상은 매출과 사회봉사, 사회공헌도, 교육 등의 여러 분야를 심사하여 농업인에게 주는 최고의 상이다. 장아찌 중심의 소규모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그녀는 매출 금액이 적어 두 번 낙방하였다.

오랫동안의 음식 관련 활동과 연구회, 그리고 좋은 식자재를 써서 사람들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세 번의 도전 끝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5년 쯤 후에는 광양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하는 식당과 교육장, 그리고 양조장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오정숙씨. 그녀의 욕심 많은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쭈욱~~

 /양 선 례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