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년 흐른 전라.경상 도계입구
1백년 흐른 전라.경상 도계입구
  • 광양신문
  • 승인 2006.10.18 18:07
  • 호수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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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550리 구비쳐 바다로 유입되는 망덕포구
옛 영화 간데 없고 횟집만 즐비, 변화의 소용돌이 실감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550 리길을 구비쳐 끝내 바다로 유입되는 땅끝마을.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룬 남쪽끝에 전어잡이로 유명했던 진월면 선소(무적섬)와 망덕의 경계인 망덕포구.

이곳에서 더 남쪽으로는 여수반도와 남해군 일대의 한려수도가 펼쳐지며 섬진강의 도도한 물줄기가 바다로 사라지게 되는 이곳은 전국에서 제일 긴 마을이라는 주민들의 말처럼 내망 입구에서 시작된 망덕마을은 강줄기를 따라 약 1백20여 가구가 2.3Km이상 길게 늘어서 있다.

지리산을 끼고 흘러온 섬진강 강줄기는 바다와 인접하는 이 곳에서 점차 넓어진다. 강 건너 하동군 금남면 갈사리까지는 5백여m로 강줄기가 커지며 망덕포구 끝 부분에서 건너쪽까지는 족히 1km는 넘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망덕포구 남쪽으로는 거대한 육지로 변해있는 광양제철의 굴뚝이 지척에 보이고 또 강건너 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이 펼쳐진 이곳의 하루는 그 옛날의 망덕포구의 명성을 찾을 길 없고 지금은 매 년 전어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횟집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변화의 소용돌이를 체험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망덕포구는 구 정류소 뒤편 인근 주변이 대형 이판장과 5일장이 설 정도로 각종 수산물이 활발하게 거래되던 남해안 교역의 중심지였다. 특히 망덕포구의 민물장어와 백합은 당시 망덕에서 거주하던 일본 사람들이 장어잡이 어선 50여척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에게 무료 대여해 주는 대신 장어를 잡아오게 해 잡아 온 장어 일부는 양식해 키운다음 자신들의 나라로 수출할 정도로 그 유명세가 대단했었다고 한다.또한 해태어업조합(수협 전신)과 해태검사소가 망덕에 위치해 광양지역에서 생산하는 모든 김은 이곳을 통해 검사를 받은 다음 일본으로 수출됐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망덕은 여러 사람들로 북적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이 마을에서 60년대 이장을 역임한 이창근(81)씨는 "일제강점기 망덕포구는 5일장도 셨는데, 당시 망덕장은 지금의 하동장 하루 전 날이 장인데, 장날이면 하동과 남해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곳까지 장을보러 왔으며, 굵직한 씨름대회도 열려 망덕은 당시 오가는 사람들이 돼지를 잡아 먹을 정도로 늘 축제분위기였다"고 전했다.한때는 망덕포구 개들도 1천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던 이곳이 지금은 희망의 포구가 아닌 망덕(亡德)포구로 변한 것은 무엇때문일까?주민들은 광양제철이 들어선 것을 제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지난 81년부터 광양제철이 들어서면서 그 좋았던 어장은 황폐해지고 주업으로 삼아왔던 김양식은 이제 옛야기가 돼버렸다는 것.거기에 수 년전 계속돼 오다 중단된 섬진강 모래채취는 부산과 대구 업자들이 다해가고 망덕의 터전인 강에서는 이제 고기와 조개들의 씨가 말라버렸다며 호소한다. 예전에는 강에 들어가 재첩을 주웠으며, 백합과 민물장어가 널리 알려져 전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그러나 지금은 모래채취로 바닥수심이 10여m로 깊어져 몇몇 사람을 빼고는 조개를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유명하던 재첩도 위쪽 하동으로 옛 명성을 넘겨주었다.번성하던 때 망덕포구는 1백50여 가구 중 50% 이상이 어업에 종사했으며, 1백20여 가구가 김 양식을 한 덕택에 겨울 한철 김양식으로 자녀들을 도심지 학교에 보내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소 무적섬에서 출항하고 회항하던 전어잡이 배가 10여 년전 자취를 감춘 지금에야 망덕에서 전어축제가 열리고는 있지만 횟집들 또한 전어철 한 때 장사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전형적인 회타운으로 변모해 버렸다.이에 반해 2백여척의 배를 보유하고 어업에만 전념하며 부촌으로 탈바꿈한 강건너의 하동군 금남면 갈사리 주민들에 비하면 너무 안타까운 자신들의 처지가 이제는 새로운 감정의 골로 바뀐 것이다.
옛날에는 하동군 금남면 고포를 비롯 갈사리와 연막주민들과 유대도 돈독해 서로 강을 건너며 결혼도 하는 등 형제처럼 지낸 이곳이 이제는 갈사리를 잇는 태인대교가 건설돼 육지로 변하면서 생활권이 달라졌다.

그러나 다행이 아직까지는 강을 두고 여전히 이쪽과 저쪽은 지역감정이니 바닥세니 하는 텃세는 없다. 이곳에서 장이서면 저쪽 주민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장을 보고 되돌아 갔으며,갈사리에 다리가 나기전까지는 저들의 유일한 통로렸다.그래서 이곳 어투는 전라도 말에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다.

   
이 마을 이장 김종기(53)씨는 지금도 저쪽에서 횟감을 팔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만나면 정치적감정 따위는 없습니다.선거 때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이곳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망덕은 그동안 주차시설이 협소한 것을 건의 끝에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해안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그러나 이 해안도로 역시 볼 거리와 먹거리로 관광객을 유치하지 못한다면 해안도로 건설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한 때 살만했다는 망덕포구가 주차시설이 해소된 해안도로 건설로 인해 옛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지는 광양시와 주민들의 몫이다.
 
입력 : 2004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