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 할 수 없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 할 수 없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12.15 14:59
  • 호수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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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달력도 벌써 마지막 장이다. 날씨는 하루하루가 겨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여유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올 한해 잘 살았다. 즐거웠다. 행복한 날 들 이었다’  라고 흔쾌히 말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어떤가? 행복했나? 지금은 행복한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의 힌트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조금은 얻을 수 있었다. 지난 주 석사과정을 지도해 주시는 교수님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학교 앞 문화센터에서 열린 특강을 듣게 되었다. 순천대학교 철학과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니체에 관한 책<니체 씨, 긍정은 어떤 힘이 있나요?>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좌였다. 그 책은 반복되는 일상, 끝없는 지루함을 망치로 깨부수듯 통쾌하게 철학 한 니체의 사상을 살펴보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자신의 인생을 당당히 책임지라는 외침 등 매일 매일을 열정적으로 살면,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 이라는 내용이다.

 니체는 니힐리즘이라고 대표되는 허무주의 선구자였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니힐리즘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즉 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그리스의 소피스트 고르기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니힐리스트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니힐리즘이란 절대적인 진리나 도덕 ·가치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 그러한 입장에 따른 생활태도 등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도 일종의 니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사회의 진보란 모든 사회적 제도를 해소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무정부주의도 니힐리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입장에서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쇠퇴시키는 그리스도교 도덕이나 불교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하여 배척하고, 삶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기성가치의 전도(顚倒)를 지향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제창하였다. J.P.사르트르나 A.카뮈로 대표되는 프랑스 실존주의도 역시 이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타개하려는 입장에 있다.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가 아무것도 가지지 말이 아닌,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말라는 것처럼 니체의 니힐리즘이 얘기한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것은 진리의 부정과 보이지 않는 저편의 부정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이란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삶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 때문에 굳이 현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될대로 된다라는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와 같은 현재쾌락주의와는 차이가 있고,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외쳤던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같은 의미이다. 키팅 선생은 영화에서 이 말을 통해 미래(대학입시, 좋은 직장)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삶(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주었다.

 나 역시도 현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고민과 불안 속에 초조한 대학생들과 맞닥뜨릴 때가 많은데, 그 좋은 시절을 저당 잡혀 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오면 단풍이 드는 세상도 모른 채, 청춘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첫눈이 오면 추억할 일들을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니체가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통해 내세운 사상인 영겁회귀(영원회귀)는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

 이 사상은 얼핏 보기에 ‘권력에의 의지’ 사상과 모순되는 결정론처럼 생각되지만, 영겁회귀를 자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 똑같은 생(生)이 무한히 되풀이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가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서 받아들이려고 하는 운명애(아모르파티), “이것이 생 이었더냐,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고 외친 생에 대한 강력한 긍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사상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신(神)이나 도덕, 그 밖의 일체의 피안적 요소를 부정한 니체에게 있어 아마도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긍정의 공식이었을 것이다.

 자 어떤가? 우리는 지금의 인생을 똑같이 또 살아야 한다면, 다시 살고 싶은 인생을 살고있나?

 강의를 들려주신 교수님께서 지난 해 발표하신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 할 수 없다’ 논문 제목을 올해가 가기 전 상기해야 겠다. 

 이지훈 순천대학교 학생지원과 조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