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 권농기(勸農旗)의 보존
교촌 권농기(勸農旗)의 보존
  • 광양뉴스
  • 승인 2015.02.27 21:51
  •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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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동 래 <시인·수필가>
우리주위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발굴해 다듬고 보존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고서(古書)와 명품은 물론 매장문화재까지 발굴해 선조들의 지혜와 예술적 재능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주위에 방치돼 있거나 매장돼 있는 유물을 찾아 보존가치를 측정하고 다듬어 보존 해야 한다.

 우리는 반세기 전만해도 농경사회 후기였기 때문에 토속신앙과 향토문화의 풍속을 이어 살아왔다. 농번기 때 힘든 일과 피곤함을 잊기 위해 농요와 풍악놀이를 했던 것이다.

 이때 활용했던 교촌 농기(農旗)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교촌마을은 우장면 중심지였으며 풍물(風樂)놀이가 유명해 그 맥을 이어 왔던 곳이다.

 그 기에 대해 내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찾아보니 광양시지 마을 편에 광양읍 교촌 마을에 문화유산과 유적이 등재돼 있는데, 그 내용은 광양향교ㆍ봉양사ㆍ홍악제 터ㆍ5의사 비ㆍ매천 황현 추모비ㆍ의사 황병학 추념비ㆍ덕석기ㆍ하마비ㆍ홍살문ㆍ봉양사 사적비ㆍ광양향교 비군ㆍ풍화루ㆍ교촌 은행나무 등 13개가 보존돼 있으니 유적 유물의 산실인 셈이다. 그중 덕석기를 보면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다. 시지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용기(龍旗)라고도 함, 권농기(勸農旗)로서 영조 40년(1764년), 당시 현감(縣監) 윤밀(尹謐1764.7~1766.10)의 지휘 감독으로 제작, 가로 3m 세로 1.8m 크기로 중국산 당목이 재료임. 4m 둘레를 30㎝ 3각형의 천을 둘렀음. 기의 흰 바탕에는 연한 하늘색 구름이 깔려있고 구름위에는 황룡과 청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이 5채색으로 그려져 있는 점이 특징임, 현재 마을에 보관중인데 최근에 별도로 하나 더 제작한바 있다.’라고 수록돼 있다.

 아마 이전부터 우장면(牛莊面) 교촌 부락은 농악놀이가 타의 모범이 되므로 시법사업으로 권농기를 제작해 준 듯, 다만 어디에도 그 사유를 명시한 곳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교촌리 마을회관에는 덕석기 2개가 보존되고 있는데, 그 유래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분은 없는 실정이다. 지금 보관중인 권농기에 새겨진 기록은《光陽郡 光陽面 牛山里 勸農旗》甲子라고 사진과 같이 오른편에 세로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처음 만들었던 기의 규격과 바탕은 동일할 것이나, 박음질이 재봉틀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상당부분 탈색이 돼 있으며, 다른 하나는 재질의 품격이 낮아 탈색과 얼룩져 볼품이 없다. 이것은 행정관청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하나 그 시기와 내용을 소상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처음 사용했던 덕석기는 일실되었으나 그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가 없고 그 내용 또한 소실(燒失)인지, 분실(紛失)인지, 망실(忘失)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현재 기록돼 있는 권농기는 1924년(甲子年)에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다. 그 근거는 우산리는 우장면에 속한 마을이고 이곳은 1914년에 우장면, 칠성면, 사곡면이 합해 광양면으로 개칭됐기 때문이다.

 권농기에 광양면 우산리로 표기돼 있고 갑자년이라 했기에 광양면으로 된 첫 번째 갑자년은 1924년이기 때문에 실증이 된 셈이다.

 그 후 1925년에 인덕면과 광양면이 합해짐으로써 8개면이 되었고 광양면이 읍으로 승격된 것은 1949년 8월 14일로 1읍 7면으로 확정되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갑자년에 제작된 것을 말함인데 보관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십 수 년 전에 동민들이 회관에서 잠을 잘 때 소홀히 했던 경우가 있었다하니 훼손이 날로 진행되었다고 봐야 한다.

 현재는 회관에 있는 보관함에 보관 중이나 완전하다고 볼 수 없는 처지며 문화원장의 의견은 농기를 원형대로 새롭게 복원해서 보존하는 것이 문화인의 책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음으로 이에 동감하는 바이다. 관련부서는 서둘러 덕석기의 복원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 

 기를 사용한 것은 농번기 때 일꾼들이 힘든 일에 흥을 돋우고 협동심을 발휘하고 능률을 제고할 목적이었다. 또한 구정과 추석 명절은 물론 마을의 행사를 개최할 때 마을에서는 기를 앞세워 흥을 돋우고 담합을 도모했던 것이다. 또한 명절에는 지역행사가 있었으며 이웃마을까지 참가해 풍년을 기원했고 아녀자도 동참해 각종 민속놀이로 즐겼다. 줄다리기는 전체 주민이 참가하는 하이라이트였다.

 이긴 편은 진편으로부터 술대접을 받았으며 이 마을 농악놀이는 읍 전체에서도 명성을 떨쳐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