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는 용기
진실을 말하는 용기
  • 귀여운짱구
  • 승인 2007.12.27 08:59
  • 호수 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경에 보면 ‘황금율’이라고 일컷는 산상설교(마태복음5장-7장)에서 예수님은 일찍이 이를 경계하여 말씀하셨다. “오직 너희는 '예'는 '예', '아니오'는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니라(마5:37)” 있는 진실 그대로를 말해야지 진실과는 상관없이 주변의 상황이나 눈치를 살펴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진실을 진실 그대로를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진실이기는 하나 들어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진실이 좋은 것이고, 자랑하고 싶은 것, 아름다운 것, 누구나 흠모할 만한 것이라면 구태여 진실을 바꾸어 거짓을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비밀들이 대체로 좋은 것이 아니고 문제되는 것, 남이 알 때 비난받을 일, 아니면 자기의 약점 같은 것이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진실을 들어내려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거나 거짓으로 꾸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좋은 예이다. 임금님의 머리를 깎는 이발사가 보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밖에 나가서 할 경우 죽을 것이라는 위협을 받고 그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이런 비밀을 혼자 간직하다 못한 이발사는 나무 밑 땅을 파고 거기에다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속이 시원해졌다. 그런데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서 그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고, 그 후부터 임금님은 굳이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들어내었고 좋은 정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동화도 진실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게 하는 점이 많다. 다른 사람의 귀와는 달리 당나귀 귀처럼 생긴 임금님, 그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을 하여 감추려 했다. 그러나 결국 그 비밀은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고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문제삼고 그 때문에 임금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임금의 정치적 능력이나 그의 온화한 품성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그 한가지 사실로 임금을 평가하려는 그 시대의 여론을 비판한 동화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안 좋다고 생각하여 감추려는 진실들은 상당 부분 들어내도 별 문제될 것이 없는 것들이다. 아니 오히려 들어내어 비판받을 것은 받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면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로, 권력에 아첨하거나 혹은 권력의 압력 때문에 진실을 진실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극 "태조 왕건"에서 보았듯이 궁예가 절대 권력을 휘두를 때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궁예가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었고,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 모두가 잘못된 것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석총 같은 고승(高僧)만이 진실을 말하다가 철퇴에 맞아 순교를 하게 되었다. 결국 궁예는 부하들의 반란으로 쫓겨나 죽고 만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운데 연산군을 몰아낸 공신들 가운데는 엉터리들이 많아서 그들을 모두 밝혀 공신록에서 빼야 한다는 조광조의 직언에 위협을 느낀 공신파와 이를 부담스럽게 생각한 중종에 의해 결국 그는 죽고 만다. 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진실은 호도(糊塗)되고, 날조된 죄목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이후 궁중에서 진실은 사라지고 온갖 음모와 중상모략만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부터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당히 거짓말을 하였다.

이런 인간의 습성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계속되어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권력을 가진 상대방에게는 그가 좋아할 말을 하고,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거침없이 거짓을 내뱉곤 한다. 오늘 이 시대의 불행이요 비극이 아닐수 없다. 다시 말하거니와 진실한 지식인, 진실한 정치인, 진실한 언론인, 진실한 문인, 진실한 그리스도인, 진실한 불교인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이다.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찾아내지 못하여 이랬다저랬다 하며,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인 것으로 알고 목청껏 그것을 진실이라고 외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 열린 눈,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우리를 지배하였던 선입견이나 편견이나 이념을 버리고 이제는 맑은 정신, 깨끗한 마음으로 즉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하겠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어둠은 어둠이고 빛은 빛이라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예'는 '예'라 하고, '아니오'는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다. 어떤 압력, 어떤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구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