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상> 영암 농업박물관에 보관된 광양 龍旗(용기)
<문화단상> 영암 농업박물관에 보관된 광양 龍旗(용기)
  • 광양뉴스
  • 승인 2015.10.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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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백운산 도솔봉에서부터 성불계곡으로 흘러오는 고운 단풍이 겹겹이 쌓인 능선마다 퍼져가고 있다. 하루하루 몰라 볼만큼 빠르고 힘차게 진군하는 단풍을 보면 저들은 오로지 요즘을 위해 뜨겁게 살아온 듯하다. 가을산은 산대로 단풍들어 흥겨웁고 들판은 무르익은 곡식들로 풍성하다. 지역마다 산 고을마다 가을축제가 펼쳐지니 즐거워할 일들이 즐비하다.

 축제의 계절에 발맞추어 어제 광양문화원에서 문화탐방의 일환으로 영암과 나주를 다녀왔다.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운 가을 여행이었다. 영암에는 농업박물관이 있었고 나주에는 남평뜰 넓은 곳에서 농업박람회가 성대히 열리고 있었다.

과거 남도 역사의 주 무대였던 드넓은 남평뜰 !

 요즘은 서울의 큰 회사들이 이전해오면서부터 새롭게 생겨나는 고층건물과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상전벽해의 혁신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신도시를 둘러보면서 세월 앞에서는 어느 것이든 영원하지 않다는 말을 실감났다. 농업박물관은 농업의 과거역사를, 농업박람회는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제시하는 뜻 깊은 행사였다.

 비단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도회지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고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기획이 잘 된 행사였다. 농업박물관에는 관람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지나온 농경문화의 역사를 잘 살펴볼 수 있었다.

 지나온 생활의 흔적을 기록하고 생활 도구들을 모아서 소중한 역사자료로 정리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물건이나 도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느꼈다. 머지않아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도 필수품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조차도 언젠가는 희귀한 도구가 되어 저런 전시관에 역사자료로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암 농업박물관에 보관된 광양 용기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장되고 있는 광양 우산리의 龍旗(용기)였다. 農旗(농기)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덕석처럼 크고 넓다고 해서 덕석기라고도 불렸다. 그 기는 박물관에서 전시되지 않고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었는데 어제는 광양문화원 일행들을 위해 특별히 전시를 해주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기였는데 기 오른편에는 ‘光陽郡 光陽面 牛山里 勸農旗 甲申年(1764년 始作 1997년 複製)’라고 써져있었고 화폭 속에는  용 두 마리가 마주보며 불을 뿜듯 포효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었다.

 영조 40년에 제작된 이 깃발은 영조가 당시 농악풍물을 잘하는 광양 우산리 마을에 하사한 깃발이라는 설과 농사를 짓는 마을에 광양 현감이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제작해 사용했던 農旗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예로부터 용은 물을 다스리는 존재, 즉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하는 신통력을 지녔고 농경사회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 기를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용이 나라의 임금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는데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 임금의 옷을 ‘용포’라 하듯 누구든 용의 그림을 함부로 그릴 수도, 사용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이 기는 임금이 내린 것이 맞다’ 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주장이 옳으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불행하게도 이 기는 현재 광양에서 사라져버렸고 다만 그 복제품이 영암의 농업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쯤 광양의 어느 박물관이나 문화원 전시실에 자랑스럽게 걸려있어야 했을 기가 낮선 땅 어느 어두운 수장고에 보관되어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행 중 한 분이 그 기를 광양에 돌려 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담당 해설사는 “그건 곤란합니다. 우리도 1997년에 100여만원을 들여 복사했습니다” 라며 씽긋 웃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사라진 진품의 기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찾을 수 없다면 그 복제된 기를 다시 복제해서라도 광양의 자존심과도 같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시 보존해야한다. 주변에 산재한 문화역사 자료를 잘 보존하고 사라진 사료를 새롭게 복원하는 일도 당당한 시민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귀중한 문화는 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자랑스러움이 되고 그 도시의 문화수준을 높여가는 강한 힘이 된다. 문화수준이 높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 도시에 대한 자긍심이 높고 상대방을 향한 배려는 물론 생활에서의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마로에서부터 시작된 광양이 1,500 여 년간 걸어온 자취와 그동안 쌓여진 역사 속에는 광양의 면면을 이어주는 정신과 사대의 주류가 뚜렷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알고 지역만의 고유한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며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가 숨 쉬는 문화관이나 박물관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어야 함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사라진 용기를 찾는 일에서부터  함께 힘을 모아 수준 높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